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442호

강대국 정치의 부상과 알프레드 테일러 마한의 귀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박주현

강대국 정치(Great Power Politics)는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을 지닌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권력 투쟁 현상으로, 강대국 간 힘의 배분 상태가 변화하거나 변화한다고 확신할 때에 두드러진다. 집단 협력을 통한 이득의 창출과 공유보다는 자국이 차지하는 이득의 상대적 크기를 우선하므로, 밀약(密約), 동맹 조정, 군비 경쟁, 세력 분할, 강제 병합, 식민 지배 등 힘의 논리를 추종하는 행태로 표출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약소국은 강대국 간 세력 다툼 또는 거래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쉽다. 강대국 정치는 국제사회의 무정부 구조가 유발하는 숙명이지만 만성적 현상은 아니며, 그 강도(intensity)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국제정치사는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된 181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의 기간을 강대국 정치가 특히나 횡행했던 시기로 기록한다.

강대국 정치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의 논리를 추종하므로 국제 무역과 투자 영역에서 중상주의(mercantilism) 행태와 연결된다. 실제로 근대 주권국가 개념이 등장한 17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경제는 고율(高率)의 관세, 무역 독점, 상업 요충지 확보를 둘러싼 경쟁으로 특징 지워졌다. 특이하게도, 강대국 정치가 절정으로 치닫던 19세기 중엽부터 중상주의 사조(思潮)가 기울고 자유무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상품 경쟁력을 갖춘 영국이 곡물법(Corn Law)과 항해조례를 폐지하여 유럽 국가 간의 교역 장벽을 크게 낮추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과 독일 등 일부 국가들의 보호무역에도 불구하고 1914년 무렵의 세계 교역 규모는 곡물법을 폐지한 1846년 이전보다 20배 증가하였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엽은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상호의존이 심화하는 세계화 현상,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 및 분할, 그리고 강대국 간 군비 경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시기였다.

해외로 팽창하던 유럽의 강대국들과 달리 19세기의 미국은 산업화와 서부개척에 집중하였다. 1880년대에 미국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공업 생산량을 기록하였으며, 1890년에는 영국의 총생산량을 두 배나 추월하였다. 일반적 선입견과 달리, 미국은 강대국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보호무역 정책을 견지해 온 국가이다. 농업 국가에서 세계 최대의 공업 국가로 변신한 미국의 19세기는 외국산 물품에 대해 50% 수준의 고율(高率) 관세를 부가하는 정책으로 국내 산업 육성에 성공한 시기였다. 미국은 자국 상품의 국제경쟁력이 확보된 이후에도 보호무역 기조를 계속 유지하였다. 지역 유권자들의 이해관계와 압력에 노출된 의회가 관세 권한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1934년의 상호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 of 1934)에 따라 관세 권한을 행정부로 위임하였고, 이후부터 미국 대통령은 총체적인 국익의 관점으로 유연하게 관세 대상과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알프레드 테일러 마한(Alfred T. Mahan)의 유명한 저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660-1783”은 영국이 막강한 해군력과 상선단으로 해로(海路)를 장악하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19세기의 산물이다. 그가 강조한 해운 능력, 무역과 식민지 확보의 중요성, 유기적인 집중과 분산의 해군 전술, 제해권 장악을 위한 함대 결전 추구는 역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에서도 유사한 저술들이 앞서서 발간되었다. 마한은 이전의 연구들과 달리, 자신이 해양력 개념으로 일반역사의 전개를 최초로 다루었다고 강조하였다. 후대 학자들도 마한을 국가발전의 전략이자 사상으로서 해양력의 위상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한다. 필자는 이에 대한 타당성과 별개로, 그의 저서가 통시적(通時的)이지 않으며, 19세기 중엽 이전에 유행했던 중상주의를 19세기 후반에 되새겨 낸 결과물로 바라본다.

마한은 국부 증진의 수단으로서 해양력을 강조했으나, 해양력이 부(富)를 창출하는 “기제(機制)”에 관한 내용은 서론과 1장에서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거점확보의 중요성과 제조업 및 무역 활성화의 당위(當爲)를 강조한 일부 구문뿐이다. 2장부터 14장에 이르는 나머지 부분들은 해양력을 해군력과 동일시하며 전쟁사에서 드러난 해군력의 역할과 전쟁 결과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실제로 그는 해양력의 역사가 국민이 위대해지는 모든 경향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지만, 주요 특징은 어디까지나 군대의 역사이며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관점은 군사적 승리가 국부(國富)의 증진으로 귀결된다는 중상주의 사고(思考)를 반영한다. 그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1660년부터 1778년 기간의 7개 전쟁과 30회 해전은 식민지 쟁탈, 경쟁국에 대한 과도한 제재와 압박, 무역의 독점적 지배 추구가 촉발한 사건들이다. 마한은 자유무역 질서로 전환되어 가던 시대에 중상주의 시각으로 중상주의 시대의 전쟁을 분석하여 자신의 해양력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마한의 이론은 중상주의를 수반하는 강대국 정치의 시대에나 적합한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바꾸어 말하면, 그러한 시대가 도래하거나, 그러한 시대를 창조하려는 행위자에게는 마한의 이론이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마한이 간략히 언급한 “생산력”을 제외한다면, 그가 제시한 강대국의 조건은 전함(Battleship) 위주의 강력한 해군력 보유, 무역과 군사력 투사에 긴요한 해외 식민지 확보, 그리고 대규모 국적 상선단의 보유 등 세 가지로 축약된다. 첫째 조건과 관련하여, 미국은 범선시대의 연안 해군을 청산하고 대형 철갑 증기선으로 전환하는 “대해군(Big Navy)” 계획을 마한의 저서가 출간되기 이전부터 추진하고 있었다. 1883년에 제정된 순양함 법안과 1890년에 제정된 전함법(The Battleship Act of 1890)이 대표적이다. 188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기간에 미국의 해군력은 세계 12위 수준에서 영국과 독일에 이은 세계 3위로 급성장하였다. 마한의 저서가 미국의 건함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미국 해군이 맡아야 할 새로운 임무와 역할, 함대 전술을 시의적절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둘째 조건과 관련한 마한의 주장은 미국이 직면하였던 당시의 국내 경제 상황과 맞물리면서 정책 결정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은 서부개척과 급격한 산업화가 수반한 과잉 중복 투자 때문에 두 차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은 상태였으며, 특히 1893년에 불어닥친 세 번째 대규모 침체(depression)는 과잉생산 및 투자의 해소처로서 해외 시장 진출을 불가피한 선택지로 만들었다.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지배층의 처지에서는 마한의 이론이 미국 유권자들의 고립주의 성향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대외 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는 훌륭한 근거로 작용했다. 1897년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와 1901년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행정부는 적극적인 해외 팽창 정책을 추진하여 하와이,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파나마를 점유하고, 유럽 강대국들이 배타적으로 분할 선점한 중국 시장에 대해 무역 기회균등의 문호개방 정책을 내세우며 진출하였다.

첫째 및 둘째 조건과는 달리, 대규모 국적 상선단 확보를 강조한 셋째 조건은 사(私)기업 부흥을 위해 재정 투입이 요구되는 사안이었다. 1865년 남북 전쟁이 종료된 이후, 미국의 민간 자본은 철도부설로 대표되는 광대한 국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었다. 범선에서 증기 철제 선박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에 해운조선업은 투자의 대상에서 소외되었으며, 그 결과 경쟁력을 갖춘 유럽 선사들이 미국의 해외 운송뿐 아니라 국내 운송 시장까지 침투하였다. 이에 더하여, “대해군(Big Navy)” 계획을 승인했던 미국 의회는 민간 조선 및 해운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부당한 특혜라며 반대하였다. 국적 상선단을 준비하지 않은 후과(後果)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곧바로 드러났다. 당시 유럽 국적의 선박들이 미국 수출입 운송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선박들이 자국의 전쟁 수행에 동원되자 중립국이었던 미국은 심각한 물류 위기를 겪게 되었다.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더라도, 전쟁의 여파로부터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통제하고 동원할 수 있는 상선단 확보가 필수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 최대의 산업국가로 성장했던 19세기 후반을 자주 언급하며 당시의 보호무역 정책을 칭송한다. 그가 마한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은 130년 전에 매킨리와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한의 이론에 따라 추진했던 정책들과 흡사하다. 강대국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인 전함(Battleship) 위주의 강력한 해군력 보유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3만톤의 트럼프급 전함 20~25척으로 구성되는 “황금 함대(Golden Fleet)” 구상을 2025년 12월에 발표했다. 미 해군은 약 2년여의 준비를 거친 뒤 2028년부터 건조에 착수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안을 제출한 상태이다. 황금 함대 구상을 지지하는 군사전문가들은 이 함대가 우주 및 지상 기반의 다층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 돔(Golden Dome)”과 연동되어 강력한 전력 승수(force multiplier)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둘째 조건인 해외의 핵심 거점 및 식민지 확보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그린란드 합병을 요구하는 언사를 반복하고 있으며, 중국계 기업의 파나마 운영권 장악을 무산시켰다. 국제법과 규범이 국가의 행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21세기 환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한 언행을 무릅쓰고 얻고자 하는 바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19세기 강대국 정치의 환경에서 매킨리와 루스벨트 대통령이 얻고자 했던 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편으로는 국익을 위해 해외거점을 확보하며 해외 시장을 장악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지지하는 고립주의 성향의 유권자들을 달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목하는 해외거점들은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을 강화해 줄 자원 생산과 공급의 요충지들이다.

셋째 조건인 국적 상선단 확보는 매킨리 및 루스벨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분기(分岐)되는 지점이다. 전자(前者)는 경제 논리와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입법과 행정명령으로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초당적으로 발의된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 및 항만 인프라법(SHIPS Act)”은 미국 조선소가 건조하고, 미국 해운사가 소유하며, 미국 선원이 운용하는 250척의 전략상선대(Strategic Commercial Fleet) 확보를 명기하였다. 과거에도 1970년 해사법(Merchant Marine Act), 1984년 선박법(Shipping Act), 1996년 해양안보법(Maritime Security Act) 등 해운조선업의 부흥과 해상수송능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지속적인 성과 창출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주의 사조(思潮)가 조장한 국제 분업 구조 때문에 미국의 부(富)와 제조 역량이 갈취당했다고 진단하며, 이에 대한 강제적이고 근본적인 수정을 지향한다. 백악관이 2025년 4월 9일 발표한 “미국의 해양 지배력 복원(Restoring America’s Maritime Dominance)” 제목의 대통령 행정명령 14269호와 2026년 2월 13일 발표한 “미국의 해양행동계획(America’s Maritime Action Plan)”은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Countries of Concern)의 선박과 화물에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여 그들의 해운조선 능력을 약화하려는 중상주의 조항을 담고 있다.

마한의 해양력 이론은 무기 체계가 발전하고 자유주의 질서가 확산하면서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진부(陳腐)한 이론으로 취급되어왔다. 거함거포(巨艦巨砲)의 해군력을 옹호하고, 통상파괴보다 함대 결전을 중시했던 사상은 양차 대전을 거치며 그 타당성을 상실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소국 영토에 대한 강제 점유나 식민화 시도는 어김없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대부분 실패로 점철되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對一路) 프로젝트처럼 막대한 투자를 미끼로 임차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해외거점 확보는 성공하기 어렵다. 중상주의 시대에 국적 상선단은 자국 세력권의 해상무역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수단이었으나, 자유주의 시대에 국적 상선단의 존재 가치는 국가적 물류 위기나 전쟁 대비의 목적으로 국한한다.

마한의 이론을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130년 전의 매킨리와 루스벨트 대통령을 뛰어넘는다. 해군력, 해외거점, 국적 상선단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마한의 이론을 수용하는 형태가 되어 버린 이유는 중상주의로의 회귀가 미국의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현실 간에는 적잖은 괴리가 존재한다. 제조업 부활, 수출 증대, 고율(高率)의 관세 장벽, 반(反)이민, 에너지 공급망 장악, 달러 패권 유지는 많은 부분에서 상충(相衝)하므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의 제조업 부활과 관세 정책이 난항을 겪었고 2기 행정부의 정책들이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용어로 풍자되듯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관성(慣性)은 만만치 않다. 지난 2025년 4월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근거로 2025년 10월 14일부터 미국으로 입항하는 중국 기업 소유 또는 중국산 선박에 대해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중국도 이에 맞대응하는 조치를 발표하였으나, 양국은 APEC 정상회담에서 2026년 11월 9일까지 상호 조치를 유예하기로 합의하였다. 양국 간의 무역 선박을 제재의 대상으로 삼는 이러한 행위는 1978년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 발생한 현상으로서 중상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강압 행위를 연상케 한다. 현재 세계의 정치경제는 자유주의와 중상주의의 갈림길에 처한 상태이며, 국제 선박 활동에 대한 미국-중국 간의 제재 수위(水位)가 중상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지표(barometer)로 작용하리라 예상한다.

박주현 박사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미 해군 병과교에서 대잠전 과정을 연수했으며,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원함(PCC-781) 함장 역임 후 합참 군사전략과에서 해상전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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