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 Periscope 제397호
필라델피아 조선소와 군함
필라델피아는 우리에게 미국이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발표한 역사적인 곳으로 다가온다. 미국은 이날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하여 오늘날에도 지역마다 불꽃축제 행사를 한다. 필라델피아라는 단어를 줄여 ‘필리(philly)’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것이 ‘필리 샌드위치’이다. 치즈와 고기의 맛이 일품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필리 조선소’가 익숙하다. 필라델피아는 펜실베이니아주에 속하지만, 뉴저지주, 델라웨어주, 메릴랜드주, 뉴욕주와도 인접하여 교통이 집중된 곳이다. 델라웨어강이 도시를 관통하여 델라웨어만까지 연결되고 내륙과 해상으로의 무역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부터 교역이 활발한 요충지였다. 미국 해군은 1801년부터 조선소와 기지를 운영해 왔으나 1996년 9월 27일 냉전의 종식과 조선업에 대한 가격경쟁에 밀려 폐쇄했다. 현재 해군기지 일부는 여전히 함정의 모항과 퇴역 후 함정을 대기시키는 곳으로 활용 중이다. 조선소는 노르웨이 Aker 조선소로 인수되어 상선을 건조해 오다가 2024년 한화가 인수하여 기술적 혁신을 통해 미국 해군에 도움이 되는 선박을 건조, 보수나 유지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필리 조선소가 한국 해군과의 인연은 만재 톤수가 약 400톤급 소해함인 영동함과 옥천함이 1975년 10월 2일 이곳에서 인수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산페드로 소재 Harbor Boat Building Company에서 1950년대 건조된 Adjutant 급 소해함들은 작전 임무 종료 이후 필라델피아 해군기지에 정박한 상태에서 한국 해군에 인수되어 2003년 12월 31일까지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소해함을 인수한 예비역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소해함을 인수하고 진해항에 무사히 입항하는 전 과정이 기적과도 같은 도전이어서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퇴역한 함정을 다시 살리고 시험항해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 해군 인수자들이 보여준 근면성과 노력에 미국 관계자들이 깊이 감동한 것은 물론 대서양을 항해하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기나긴 여정에는 높은 파고와 군수지원에 대한 불안이 함께 했다. 특히, 소해함이 하와이 출항 직후에 약 6미터 높이의 파도를 만났을 때 그것을 이겨내며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관 장비에 대한 정비 능력, 조함술, 그리고 함장과 승조원의 단합된 팀워크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한국 해군은 미국의 무상원조 군함이 주를 이루면서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독자적인 군함 건설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1980년대에는 FF와 PCC를, 1990년대부터는 KDX-I, KDX-II, KDX-III 함정을 건조 및 운용하고 있다. 특히, KDX-III는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조만간 한국형 차기 구축함인 KDDX에 대한 건조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수상함뿐만 아니라 잠수함에 대한 독자적인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장보고-III에 대한 수출에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조선업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현대와 한화(구 대우조선해양)에서 조선업에 대한 기술적 발전을 이룬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적기에 다양한 체계를 통합하여 건조하고 정비할 수 있는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 조선업의 비약적 성장은 냉전 이후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작한 미국과는 구별된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미국은 높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사업의 설계 부분에 치중하면서 중저급 기술을 이용한 생산시설은 외국으로 이전시키거나 외국 기업에 투자한 결과 조선업을 포함한 미국 내 노동집약적 사업은 사양길을 걸었다. 전반적인 미국의 선박 건조량에 있어서는 중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 핵추진 잠수함, 구축함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전투기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영국과 일본의 항모 갑판 페인트는 미국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양산에 들어간 스프루언스급 구축함의 함형을 직접 설계한 King 제독에 따르면 당시 MIT에서 최고의 조선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군함 선체는 이후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적 해안 깊숙이 작전을 펴야 하는 Perry 급 프리깃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실질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연안전투함인 프리덤급과 인디펜던스 급으로 구분하여 알루미늄 선체 기반 모듈화 함정을 건조했지만, 비용과 내파성, 엔진에 문제가 발생하여 지금은 추가 건조를 취소한 상태이다. 이를 대체하기 위한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 급 프리깃은 위스콘신에 있는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incantieri) 회사에서 건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군함 건조 및 유지에 대한 증가하는 수요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여 특별 조치가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미국의 실습함(YP, Yard Patrol)를 타고 아나폴리스를 출항하여 델라웨어 운하를 통과하고 필라델피아 앞바다를 지나 1달간 대서양 도시인 뉴욕, 보스턴, 찰스턴을 방문하는 항해 실습을 했다. 샌디에이고에서 스프루언스(Spruance)급 구축함을 타고 약 6주간 태평양에서 항해 실습을 하였는데 10미터 높이의 파도에도 피항하지 않고 항해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해상에서 페리(Perry)급 프리깃으로 헬기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6미터 파도에서 헬기 이착륙 훈련을 쉬지 않고 했었다. 스프루언스급에 이지스 체계를 올린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순양함에도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상부 구조물이 높아 파도에 많이 흔들렸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항공모함에 C-2 수송기를 타고 이착륙했으며 강습상륙함에서도 약 6주간 함상 실습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의 최신 이지스 구축함에서 2달간 연속으로 소말리아 해상에서 작전을 펼친 적이 있다. 실전적인 교육 훈련과 함정 건조 철학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영국, 중국, 러시아 군함에도 방문했다. 군함이 국가의 영토를 상징하듯 한 국가의 군함은 국가의 정체성이 녹아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군함이 가진 장단점이 있으며 한국 해군 군함이 가진 장단점이 있다. 함정을 적기에 효율적으로 건조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또한, 실제 전쟁을 통해 축적된 함정 건조 비법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서로의 장점을 이해하고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과 미국 간의 조선 협력이 상생할 수 있으며 동맹관계도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가(MASGA,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기치 아래 한미 간 조선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State of Maine 명명식 축사에서 “이곳 필리 조선소를 통해 72년 역사의 한미 동맹은 안보 동맹, 경제 동맹, 기술 동맹이 합쳐진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의 새 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군력을 포함하는 해양력을 강화하는 것은 양국의 안보를 강화하는 것인 만큼 안보 차원에서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경제 동맹은 한미 조선업 간의 협력이 강화되어 보다 많은 함정을 효율적이며 튼튼하게 건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 동맹은 AI와 로봇을 활용하여 미국이 설계하고 한국이 건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거나 상호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군함에 따라 건조 난이도가 다른 만큼 비교적 쉬운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부터 만들면서 기술적 성숙도를 높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MASGA 관련 “우리는 한국에서 배를 사들일 것이지만, 우리 국민과 함께 배를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하면서 한국의 조선업이 한국과 미국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조선업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선박 블록을 생산하여 이를 해상을 통해 미국으로 이동시켜 미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렇다면 1975년 10월 2일 영동함과 옥천함이 이동했던 그 해로를 거슬러 이동하는 것이다. 당시 영동함과 옥천함을 인수해 온 간부들이 이러한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 약력
권영일 박사는 해군 전력분석시험평가단 예비역 교리연구관이다. 해군대학, 한성대,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강의했다.
- 국내외 추천자료
- DredgeWire. “The US Navy’s Shipbuilding Crisis Is Real.” DredgeWire, August 20, 2025.
- Reuters.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package key to reaching trade deal with South Korea.” Reuters, July 31, 2025.
- Steve Balestrieri. “The U.S. Navy Crisis No One Saw Coming.” National Security Journal, July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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