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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87호

4차 산업혁명시대에 다시 본 영화 「미드웨이」가 한국군에 주는 전략적 함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 덕 기

1942년 9월에 존 포드 감독이 제작한 「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에 이어 2019년 12월 31일 개봉된 롤랜드 에버리히 감독의 영화 「미드웨이(Midway)」는 1942년 6월 태평양의 전략 요충지인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려던 일본 제국 항모기동부대가 벌떼처럼 기습적으로 날아든 미국 항공기의 공격에 궤멸되어 참패를 당한 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이 그 무대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 태평양함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이후 여세를 몰아 미드웨이를 공격한다. 그러나 미국은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이를 예측하고 철저한 준비로 일본 함대를 파멸시켜 전세를 역전시킨 후 일본으로부터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꾼 해전으로 회자되는 전투다.

특히 미드웨이 해전은 산호해(Coral Sea) 해전에 이어 처음부터 전투함의 포격전 없이 항공모함 함재기로 치러진 두 번째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미국은 일본 항공모함 4척을 격침시켜 태평양 제해권 확보로 반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은 최근 제4차 산업혁명의 고기술을 바탕으로 군사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군에게 몇 가지 전략적인 함의를 준다.

첫째, 국가지도부는 전쟁 지휘 능력이 있는 지휘관을 임명해야 한다. 그리고 임명 받은 지휘관은 손자병법 모공편(謨攻編)에 나오는 말처럼 전쟁 시 ‘예하부대 지휘관 및 병사들을 믿고 뜻을 같이해야 승리(上下同欲者勝)’할 수 있다. 미드웨이 해전 지휘관으로 미국해군은 진주만 기습으로 대패한 이후 책임을 지고 떠난 태평양함대사령관 허스밴드 킴멜(Husband Edward Kimmel) 제독의 후임인 체스터 니미츠(Chester William Nimitz) 제독을, 그리고 일본해군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제독을 임명했다. 야마모토 제독은 진주만을 기습해 미국 태평양함대를 무력화시키면서 일본의 영웅이 됐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야마모토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 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제독을 못 미더워 했다. 나구모 제독은 전공으로 진급한 것이 아니라 연공서열 덕분에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만 공격에 참가했던 나구모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 시 항공모함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정작 항모와 항공기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야마모토 제독은 나구모 제독을 믿지 못하고 작전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챙겼다. 특히 미드웨이 해전에 출정하는 나구모 제독에게 지휘의 융통성(Flexibility of Command)을 무시하고 “미드웨이 주변 해역에 미국 함대가 있을 수 있다. 미국 함대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항공 전력의 절반을 남겨둬라”고 명령까지 내렸다. 그리고 나구모 제독은 전쟁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었는데도 확신과 임기응변 없이 야마모토 제독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

반면,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해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니미츠 제독은 참모들에게 일본의 진주만 기습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유임시키자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니미츠 제독은 자신이 직접 뽑은 지휘관을 끝까지 믿었다. 특히 일본의 공격 목표를 두고 니미츠 제독의 참모와 해군본부의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니미츠 제독은 일본의 공격목표를 미드웨이로 파악한 자신의 참모들을 지지했다. 특히 어니스트 킹(Ernest Joseph King) 해군참모총장은 프랭크 잭 플레처(Frank Jack Fletcher) 제독을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니미츠 제독은 플레처 제독을 미드웨이 해전 지휘관으로 참전시켰다.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로 떠나는 지휘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감내할 수 있는 위험만 감내하라. 아군 전력(항모)을 적에게 줄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라.” 즉 니미츠 제독은 전쟁에 참가하는 지휘관들에게 지휘의 융통성과 행동의 자유(Freedom of Action)를 주었다.

둘째, 미래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군 최고 지휘관은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군사력 건설 시 기술변화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야전 지휘관은 새로 개발된 무기체계를 100% 이해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전력에서 일본에 열세였던 미국해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다 기술의 도움이 컸다. 레이다 기술은 19세기 후반에 출현했지만 전파를 효과적으로 송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 기술이 없어 실용화가 어려웠다. 그 이후 1926년 영국에 유학 중이던 일본인 공학자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와 우다 신타로(宇田新太郞)는 우수한 전파지향성으로 물체 탐지가 가능한 안테나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서구에서 크게 호평을 받아 군사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레이다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특히 레이다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은 1935년 ‘야기-우다 안테나(Yagi-Uda Antenna)’를 접목한 군사용 레이다를 개발하여 실전에 배치했다. 그리고 1940년 영국공군은 레이다를 이용한 방공 시스템으로 독일 공습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군 수뇌부는 자국민이 개발한 첨단 기술을 무시하고 불안정한 레이다 기술보다는 훈련시킨 인간의 시력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일본군은 1942년 싱가포르 점령 후 입수한 영국군의 레이다 관련 문서에서 반복되는 ‘야기(Yagi)’라는 단어를 접하자 암호로 생각하고 영국군을 심문하면서 안테나 발명자인 일본인 이름이라는 대답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부랴부랴 레이다 개발에 나섰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연합군은 레이다를 적극 활용하여 미드웨이 해전 등 주요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셋째, 야전 지휘관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분석하여 전장공간인식(Battlespace Awareness)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대패한 미국해군은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이를 예측하고 철저히 준비했다. 특히 정보 분석의 중심 역할을 한 태평양함대사령부의 암호해독반인 하이포국(Station HYPO)은 1942년 4월 일본군의 무전교신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미 일본해군의 암호 체계인 JN-25를 해독하고 있던 해독반은 ‘AF’라는 문자가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AH’는 진주만을 의미했다. 암호해독반의 지휘관이었던 44세의 조제프 로슈포르(Joseph Rochefort) 중령은 ‘AF’를 ‘미드웨이 섬’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정찰기가 “‘AF’ 근처를 지나고 있다.”라는 내용의 무선 보고를 해독한 적이 있었던 로슈포르 중령은 정찰기의 비행경로를 추정한 결과 ‘AF’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로슈포르 중령은 니미츠 제독에게 일본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과 ‘AF’가 자주 언급된다는 점, 그리고 ‘AF’가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는 보고 후, 미드웨이 섬의 담수 시설이 고장 났다는 내용의 가짜 전문을 하와이로 평문 송신하자고 건의했다. 3월에 미드웨이 섬 근해에 일본해군의 정보함이 정찰했던 사실을 알고 있던 니미츠 제독은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사실 미드웨이 섬의 정수시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틀 후, 도청된 일본군 암호 중 “‘AF’에 물 부족”이라는 내용이 해독되었다. 이로써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만약 니미츠 제독이 부하의 정보판단을 무시했다면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적의 무기체계와 전술을 철저히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零式艦上戦闘機)는 뛰어난 기동성과 상승속도, 긴 항속거리, 높은 고도에서의 전투가 가능한 능력 등으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 연합군 조종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제로센기의 이러한 뛰어난 기동성은, 중일전쟁 등을 거치며 공중전 경험을 쌓은 숙련된 일본군 조종사들의 조종술과 결합되어 태평양 전쟁의 서전에서 F2A 버팔로나 P-40 등 시대에 뒤쳐진 저성능의 항공기와 대부분 숙련도가 낮은 조종사들이 많았던 태평양 지역의 연합군을 압도, 연합군 지휘부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미국은 제로센기를 철저히 분석한 후 방어력이 약하다는 단점을 간파하고 대응전술을 개발하여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미국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적용한 전술 등을 다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일본 제로센기에 대응하는 전술을 발전시켰다. ① 제로센기는 특히 저속에서의 선회반경이 무척 짧으므로 절대로 이 비행기와 저속선회를 통해 꼬리 물기(Dog Fighting)를 시도하지 말라. ② 이 비행기는 부족한 엔진 출력으로 높은 기동성을 내기 위해 구조적 강도를 희생시켰기 때문에 급강하 능력이 떨어지므로 제로센기에게 꼬리를 물릴 경우 급강하하여 회피하면 벗어날 수 있다. ③ 저속영역에서는 매우 민첩하지만, 시속 200마일(320km/h) 이상의 고속 비행시 주 날개의 양 끝 부분에 붙어있는 보조익(Aileron)의 작동이 급격하게 무거워져 기동성이 상당히 감소하며, 특히 롤(Roll)성능은 시속 250km를 경계로 매우 급격히 악화되므로,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여 대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의 승부령은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유능한 전사들(Warriors)이었다. 일본은 ‘승리병(病)’에 걸려 미드웨이 해전 시작부터 자만했다. 미국이 겁을 먹어 일본과의 싸움을 피할까 걱정할 정도였다. 일본은 사전 도상연습에서 미드웨이 작전계획의 허점이 많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철벽 방어력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를 무시했다. 하물며 미드웨이 해군기지에서는 방어를 보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만심에 빠져 미드웨이를 공격하려는 자신들의 작전을 미국이 알아챘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미국해군을 이끈 니미츠 제독은 부하들과 전쟁의 목표를 같이하고, 부하들을 신뢰함으로써 행동의 자유와 지휘의 융통성을 부여하여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군은 군 복무 인력의 부족 등 다양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기초로 좋은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드웨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니미츠 제독과 같은 지휘관과 미국 뇌격기 조종사들의 승리만을 위한 희생으로 일본 항모를 공격했던 것처럼 투지가 강한 장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덕기 박사(strongleg@naver.com)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영국 헐(Hull)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세계인명사전(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2006)된 바 있다. 청와대 행정관 ‧ 합참 군사협력과장 ‧ 해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 ‧ 세종대왕함 초대함장 등 역임 후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한국군사학회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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