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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모닝포럼

제125회-“국가위기와 한국의 보수·진보”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북한의 핵보유 추구로 인한 외생적 위기와 국내 이념적 대립으로 인한 내재적 갈등으로 이중적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음. 한국의 좌우세력 간 갈등은 미국이나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음. 특히 서구의 선진국에서는 보수·진보 세력의 이념과 정책은 서로 상이하지만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땐 철저히 국익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경향이 있음.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같은 위기상황이라도 진단과 해법제시가 극명하게 갈라져 오히려 위기를 더 고조시키는 경향이 있음.

  한국의 현 정치지형은 진보좌파정당이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보수우파정당이자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양대 산맥으로 구성되어 있음. 영국·독일·프랑스 등 서유럽국가들과 다른 특징은 정통 사회민주주의정당인 정의당이 있기는 하나 원내 의석을 기준으로 볼 때 군소정당 규모의 수준이라 할 수 있음. 이외에도 친여·친야계의 군소정당들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 현 한국의 정치지형은 미국의 정당체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음.

  보수우파세력인 자유한국당은 현재 빈사상태이 있다 할 수 있음. 한국당의 뿌리는 1990년 보수3당 합당인 민자당(민주자유민주당)임. 민자당은 소수파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의 민정당과 정통보수야당이자 제2야당인 김영삼의 민주당, 그리고 제3야당인 김종필의 공화당이 원내다수당이 되어 제1야당인 김대중의 평민당을 견제하기 위해 통합한 정당이었음. 2년 후 김영삼은 노태우의 후계자가 되는데 성공,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당명을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바꾸었으며, 그 후 이회창 때는 한나라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박근혜 시절에는 새누리당으로 순차적으로 바뀐 다음 박근혜 탄핵후 자유한국당이 되었음.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이 대선출마를 위해 민주당을 탈당해서 만든 평민당에서 기원했으며, 김대중은 제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에게 패배한 다음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었음. 김대중 대통령은 영국의 온건진보파인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이 진보라고 자칭하지는 않았음. 민주당이 오늘의 더불어민주당에 이르는 과정에서 ‘진보정당’임을 자임한 것은 노무현과 현 대통령에 이르러서임.

  한편 한국정치사에서 학생운동권의 이념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왔는가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 건국 후 적발된 조직적인 학생운동의 효시는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학생시위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발동된 6‧3계엄 아래서 안기부가 발표한 이른바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에 관련된 서울대 문리대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련) 사건임. 좌익지하혁명조직인 인혁당이 민비련 소속 학생들을 배후에서 선동해 3‧24시위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이었음. 이 사건으로 민비련 소속 박범진·김중태·이종률·김경재·현승일·김도현·박재일 등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나 2005년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이 사건은 조작된 사건으로 밝혀졌음.

  또한 유신 선포 후인 1974년 다시 안기부가 적발했다고 발표한 제2차 인혁당사건과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역시 과거사위는 조작사건이라는 같은 결론을 내렸음. 이 사건으로 무려 대학생 1,024명이 검거되고 그중 253명이 군검찰에 송치되어 그 중 54명이 재판을 받았음. 그러나 2005년 과거사조사위원회 조사결과 이 조직은 국가반란을 목적으로 조직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유신반대 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었다고 밝혀졌음. 1979년 11월의 세칭 YWCA 위장결혼사건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이른바 체육관식 선거를 통한 전두환의 대통령선출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음. 이상의 모든 시위사건은 한일회담 반대 및 유신반대 등 민주화운동이었고 반미운동은 아니었음.

  학생운동권이 본격적인 반미운동을 벌인 계기는 1980년 광주항쟁이었음. 반신군부 세력인 학생운동권은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용인했다고 주장해 단기간에 반미감정을 확산시켰음. 이 시기에 일어난 학생운동은 이른바 무림사건과 서울대민추위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반제반파쇼 민족민주주의운동으로 민족민주혁명을 이념으로 삼았음. 1980년의 광주 미문화원방화사건은 이 같은 반미운동의 시발이기도 하였음.

  이들 학생운동권의 반미운동은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민민투(반제반파쇼 민족민주화투쟁위원회)는 한국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로 보는데 반해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는 ‘식민지 반자본주의사회’로 보았음.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인가, 신식민지이냐는 논쟁인데, 어느 편이든 한국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임. 민민투는 ‘선 민중해방(민주) 후 민족해방(자주)’을 주장해 평등(PD, Peoples’ Democracy)파가 되고, 자민투는 ‘선 민족해방(자주) 후 민중해방(민주)‘을 주장해 자주(NL, National Liberation)파로 호칭되었음.

  신식민지란 제2차 세계대전 후 후진국의 민족의식이 고양되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더 이상 구식민지 정책과 같은 무력적이고 폭력적인 직접 통치를 할 수 없게 되자 후진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형식적 독립정권을 수립시키고, 그 정권으로 하여금 후진국을 통치케 하고 그 정권의 배후에서 간접적으로 후진국을 지배, 후진국의 이윤을 착취하는 지배체제를 뜻하는 것임. 이 이론은 이미 1950년대부터 유럽에서 논의된 고전적인 좌파이론이지만 1980년대 초신군부지배 하의 한국사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될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음. 그런데 90년대 초의 동구권 사회주의체제 붕괴와 서독에 의한 동독흡수 통일은 한국의 좌파지식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음. 레닌식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던 좌파지식인들과 학생운동권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음. 그런 가운데서 일부 운동권은 급진적인 좌파민족주의자로 변신하기도 하였고, 일부 진보적 지식인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주목해 좌파들의 이론인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버리고 중진자본주의론으로 돌아서기도 하였음.

  개략적이지만 이상이 한국의 정치지형이 보수우파정당-진보좌파정당 등으로 구분되어 진화되어온 과정임. 본래 우파나 죄파, 또는 보수나 진보세력은 서로 공존이나 협력이 불가한 세력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변화가 필요할 시 변화의 폭과 속도에 관한 정도에 있어서만 차이를 보이는 것임. 따라서 국익이라는 관점에선 상호 같은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상호간 협력을 추구한다면 초반부에 제시한 현재의 국내외적인 이중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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