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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29호

남중국해 분쟁의 ‘무임승차’ 동향과 원인

해군본부 전평단
교리발전처장

박 주 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한과 주변국 정상들의 행보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던 시기에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의 영유권 장악을 미리 알려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여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은 보아오 포럼을 앞둔 4월 초순부터 남중국해에서 랴오닝 항모전단이 참가하는 대규모 해상훈련을 실시했으며 4월12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항모전단에 대한 해상열병식을 개최했다. 5월3일에는 미국 언론에 의해 중국이 남사군도의 피어리 크로스 암초 등 주요 3개 인공섬에 지대공(HQ-9) 및 지대함(YJ-12B) 미사일을 배치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한 5월 18일 중국은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서사군도의 우디섬에서 H-6K 폭격기 이착륙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중국의 훈련에 대응하여 루즈벨트 항모전단이 6월 5일부터 남중국해에서 싱가포르 해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한 바 있으며, 서사군도 인공섬 12해리이내에서 미 구축함(히긴스와 앤티템)이 항행의 자유작전(FONOP)을 시행했다. 메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6월2일 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무기배치를 주변국에 대한 위협과 협박으로 규정하고 중국과 맞서야 할 때는 강력하게 맞서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중국대표단 단장인 허레이 군사과학원 부원장은 군대와 무기 배치는 국제법이 허용한 중국의 주권범위 안에 있으며, 미국이 남중국해에 군함과 항공기를 전개하는 행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기존의 답변을 되풀이한 바 있다.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하여 미국은 오랜 기간 방관에 가까운 ‘관여자’ 입장을 유지했다. 영유권 분쟁이 나타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군사력 전개 및 시위와 무력 충돌의 대부분은 이 지역 당사국들 간에 발생한 것이었다. 미국은 아세안 개별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중국의 행동을 비난하며 아세안 국가들의 공동대응을 촉구하거나 우방국들과 소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수준으로 대응하였다. 남중국해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시기는 2013년 11월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군사기지화를 위한 인공섬 건설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미국은 이 시기부터 강경한 성명과 행동을 수반하는 적극적인 ‘이해당사자’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2014년에 필리핀과 방위협력 확대협정(EDCA)을 체결하여 미군의 상시적인 필리핀 주둔과 연합훈련을 가능케 하였고, 2015년 10월에는 중국이 건설한 두 개의 인공섬(Subi Reef 및 Mischief Reef) 12해리 이내에서 미 구축함에 의한 ‘항행의 자유작전’을 최초로 실시한 바 있다. 미국은 2010년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중국해는 미국의 이해와 직결된다고 공식선언했지만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취하기까지 3년이 넘는 세월을 허비했다.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후 남중국해 분쟁 양상은 크게 보아 두 가지 행태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 간 ‘상응보복’(tit-for-tat) 행태이다. 미국은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인공섬의 군사기지화 수준이 강화될 때마다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하고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항의성명과 해상훈련•순찰강화 조치로 대응한다. 둘째는 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 등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의 이른바 ‘무임승차’(free-ride) 행태이다. 항행의 자유 작전이 실시된 2015년 이후 이들 국가들의 대응은 주로 외교적 수사(diplomatic rhetoric) 차원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아세안 국가들을 연합시켜 중국에 대응하는 노력을 강화하였지만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신통치 않다. 필리핀은 2016년 6월 두테르테 정부 출범이후 친중(親中) 정책을 취하면서 중국의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에 대한 대응을 거의 미국에 맡겨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13년 1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하고 미국과 연합훈련을 강화하는 등 줄곧 강경한 입장을 지속해 온 국가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책기조를 바꾸었다. 최근 인공섬의 군사기지화 보도에 대해서도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중국이 안보위협이 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지역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건설적인 노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한다고만 밝히는 등 거의 방관자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였다.

  베트남은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과의 합동훈련 중단을 선언한 직후인 2016년 10월에 베트남 전쟁이후 처음으로 미 군함의 기항을 허용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해군의 활동이 증가한 올해 3월에는 미국 칼빈슨 항모전단의 기항을 허용하는 등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겨냥한 군사시위나 연합훈련을 삼가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어로 및 자원개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중국과 1974년에 서사군도 무력충돌, 1979년에 국경에서의 전면전쟁, 1988년에 남사군도 무력충돌을 치렀고 수시로 반중(反中)시위가 발생하는 국가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용적인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금번 인공섬 미사일 배치와 폭격기 이착륙 훈련에 대해서도 베트남 정부는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외교부 성명 ─즉, 베트남의 주권 존중과 군사기지화 활동 중단요구─ 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미국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분쟁 당사국들이 무임승차 경향을 보이는 원인으로서는 중국의 경제적 침투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무역과 투자 확대는 근본적 원인이 아니다. 한국-일본, 중국-일본, 러시아-일본간 분쟁의 사례처럼 경제적 침투가 영유권 대응을 약화시키거나 미국의 안보우산에 무임승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 간의 이원적 대립구도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유권은 아세안 국가들 상호 간에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다. 1990년 후반에 필리핀-말레이시아, 필리핀-대만, 베트남-필리핀, 베트남-말레이시아 간 영유권을 둘러싼 긴장과 낮은 수준의 군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16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9단선이 법적근거가 없다는 판결과 더불어 대만이 남중국해에서 실효지배 중인 태평도(Itu Aba)를 섬이 아닌 암초로 규정했다. 최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지는 대만에서 태평도를 미국에 군사기지로 빌려주는 주장이 나왔다고 보도하였다. 만약 그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남중국해에서 대만과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과 베트남은 친중(親中)행보를 가속화 할 것이다. 둘째, 남중국해 분쟁의 고유한 특성이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1968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이 해역의 자원탐사 활동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촉발되었다. 즉,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는 영토분쟁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쟁과 점령의 역사보다는 자원문제가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일본 간 독도, 중국-일본 간 조어도, 러시아-일본 간 북방 4개도서 문제는 식민지와 전쟁의 집단기억을 상징한다. 역사의 상흔에 뿌리박혀 있는 영유권 분쟁과 그러한 뿌리가 존재하지 않은 영유권 분쟁에서 당사국들의 전략적 선택과 행동은 같을 수가 없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부가 영유권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으로 선회해도 국내정치적으로 도전을 받지 않는다. 반면, 동북아 영토분쟁에 대한 유화적인 입장선회는 정치생명을 각오해야 한다. 중국의 무역 및 투자 확대는 이 두 가지 원인이 사전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 효과가 발휘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난 5월30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관으로 취임한 필립 데이비슨 해군대장은 중국이 전진 작전기지를 완성하였고 미국과의 전쟁만 제외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호주의 전략정책연구소장 피터 제닝스는 6월 4일자 언론 인터뷰에서 모두가 중동의 IS와 아프간 문제에 집중할 때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향후 남중국해에서 어로와 자원개발 등 다양한 사안에서 소규모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해당사건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 전개방향과 규모를 결정하는 열쇠는 이미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하고 싶다. 중국은 글로벌 전략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남중국해에서의 사소한 사안도 안전항해와 안보를 이유로 그 정치∙경제∙군사적 파장을 조정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 전쟁이라는 현상에만 매몰되면 평화와 전쟁 사이에 위치한 다양한 수준의 사건들이 지닌 ‘포석’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남중국해에 관한 중국의 계산에 우리 해군의 존재가 들어가 있지 않다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선택의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주현 대령(irnavy@hanmail.net)은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미해군 병과교에서 대잠전 과정을 연수했으며, 미국 클래어몬트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원함(PCC-781) 함장 역임후 합참 군사전략과에서 해상전략을 담당했으며 현재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에서 교리발전처장으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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