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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42호

미·중 해양패권 경쟁과 ‘회색지대전략’

― 중국 해저 무인기지 추진의 파장

전 경북대·충주대
교 수

박 윤 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정 삼 만

평화를 ‘전쟁의 부재’라고 아주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쟁이 없는 한 그저 평화로워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당장 국가 간 공식적으로 선포된 전쟁이 없다고는 하더라도 평화롭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공식적인 선전포고가 없이도 흑해의 크림반도가 러시아 수중으로 넘어갔고, 남중국해의 여러 섬이나 암초들이 사실상 중국의 소유로 되어가고 있다. 군사적 침략을 통해서만이 확보 가능한 전략적 목표들이 기습 아닌 기습의 방식으로 달성되어지고 있다. 전쟁이 없어 평시라고 하지만 전쟁을 통해서만이 성취 가능한 국가의 전략적 목표들이 전쟁 없이 달성되어 지는 것을 보면 지금의 평시는 더 이상 평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지금 전시도 평시도 아닌 그 중간영역인 ‘회색지대'(gray zone)에 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최근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군사적 무력시위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고 언론매체들은 보도하고 있다. 남중국해 게이븐(Gaven) 암초 부근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 중인 미국해군 디케이터(Decatur)함에 중국의 뤼양(Luyang)급 구축함 한 척이 40여 미터 가까이 접근하여 충돌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벌어진 바 있었다. 물론 미 군함의 신속한 ‘충돌방지’ 기동으로 중국 군함과의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은 또한 최근 남중국해에서 전략폭격기를 사실상의 중국 영공을 통과 비행시키면서 계속해서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비행·항해하고 작전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같은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군사력 시위는 외양상 중국의 해양팽창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중국이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적용하고 있는 이른 바 ‘회색지대전략’(gray zone strategy)을 살펴보면 이해가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회색지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대석학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쉘링(Thomas Schelling)이 제시한 비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여기에 소개하는 예시는 토마스 쉘링이 제기한 비유를 독자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필자가 약간 수정한 것임을 밝힌다.

  한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물이 목에 차는 곳에선 수영하지 말라”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것은 아들에게 엄마가 내리는 일종의 레드라인 또는 한계수심(threshold)이다. 통상 상대에 대해 레드라인을 설정할 경우 설정한 측은 상대의 레드라인 월선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레드라인 공표 이후 처음부터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엄마는 아들이 입수하는 순간부터 아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엄마의 염려와 우려를 충분히 인지한 아들은 그래도 입수를 한다. 그러나 입수를 하되 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대신 둑에 앉아 발만 물에 담근다. 수심은 무릎까지 적신다. 입수는 하였으나 아직 둑에 걸터앉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 위험이 닥치는 상황이 아니어서 엄마의 특별한 제지는 없다. 아이는 한참 있다가 앉은 자리에서 서서 더 나아가지 않고 그 곳에서 정지하게 된다. 여기에서 엄마가 걱정하는 것이 수심의 변화이기에 아직까지 수심의 변화가 없는 바, 이번에도 엄마는 별다른 제지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아이는 조금 있다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다 일정 지점에서 멈춘다. 아직까지 수심의 변화가 크지 않은 곳까지이다. 이를 본 엄마는 다소 놀라지만 그래도 수심이 처음보다 더 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을 유지한다. 아이는 다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심이 약간 오르는 곳까지 가되 거기서 멈춰 서있지 않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한다. 하지만 아이의 최종 수심은 처음 입수 시 수심보다 약간 더 깊지만 최초 위치와 최종 위치 간의 평균수심은 최종 수심보다 더 낮기 때문에 엄마로선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수심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 다른 제지가 없다.

  아이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심을 약간씩 늘려가며 최초 위치에서 그 곳까지 왔다 갔다 하는 왕복행위를 계속한다. 엄마 역시 계속 수심이 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의 왕복행위로 인한 평균적 수심의 변화는 아직까지 위험해진다는 인식이 들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다른 금지나 제지를 위한 지시를 하지 않는다. 아이는 이러한 점진적 방식으로 엄마의 특별한 제지 없이 점점 수심의 깊이를 더해가다 결국 수심이 목에 찬 곳에 이르러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엄마는 뒤늦게야 깨닫고서 아이에게 외친다. “좋다. 그 곳에서 수영은 하되 내 시야 밖에선 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아이가 엄마에게 ‘회색지대전략’을 적용, 상대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우회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한 예시이다. 통상 레드라인을 넘으면 처벌이나 제재가 뒤따른다. 여기에서 처벌이나 군사적 제재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꼭 지켜야 하는 레드라인은 곧 한 국가가 천명한 공약(commitment)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이처럼 전쟁에 이르지 않으면서 한 국가의 안보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회색지대전략’의 본질이며 이 전략의 특성은 위의 예시에서처럼 점진주의(gradualism)와 애매모호함(ambiguity)이다. 상대의 행위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지만 그 행위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색지대전략을 구사하는 측은 의제 또는 어젠다(agenda)를 가능한 잘게 많이 ‘썰어’(slicing) 상대로 하여금 이 전략의 의도와 동기가 무엇인지 모르게 한다. 때로는 이 전략의 의도와 목적을 간파했다 할지라도 이에 대한 사전 대응책이 없을 경우엔 알면서도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전략의 실행자는 선제적 조치로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여 상대로 하여금 적절한 반응이나 대응을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남중국해에 산재된 암초를 매립, 인공섬을 조성하여 비행장을 건설하고 대공미사일을 포함한 각종 군사시설 등을 배치∙운용하고 있다. 또한 남중국해 대부분을 차지하는 9개의 점선을 연결한 U자형의 선을 긋고 그 안쪽 해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전시도 아닌 평시인데도 불구하고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해상통제권을 장악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중국이 그동안 남중국해의 군사화 및 내해화를 위해 과정의 세분화, 점진적 접근방식 동원, 동기 및 의도의 애매모호화, 그리고 기정사실화 방식을 특성으로 하는 ‘회색지대전략’을 성공적으로 적용해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하는 역내 관련 이해당사국의 입장에서 중국에 대해 군사적 충돌이나 대규모적 제재를 초래할 수 있는 레드라인 또는 문턱(threshold)의 수위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결과만을 놓고 볼 때 중국이 그 금지선을 훨씬 우회해서 넘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회색지대전략’의 유용성이 다시 한 번 입증되는 대목일 것이다.

  ‘회색지대전략’은 일종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래 전략의 본질이 위계(僞計) ―즉, 상대로 하여금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물론 평시 ―그것도 대명천지에 이러한 위계를 부린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법이고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작용하는 현실세계에서는 힘은 곧 정의이고 국익이 최고의 가치이자 선(善)이다. 이에 국가이익은 오직 과정보다는 결과를 가지고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색지대전략에 관련해서는 특성상 오직 유용성만 거론되지 불법성이나 비도덕성 등은 거론되지 않는다. 또한 회색지대전략과 관련하여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전략에 대한 마땅한 대응전략의 모색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회색지대의 전략을 우리의 해양안보 상황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때 국가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공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박윤일 전 교수(Colombopak@hanmail.net)는 경북대와 충주대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정삼만 박사(smchung715@kims.or.kr)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한국 국방대학원 군사전략 석사와 미국 미주리 주립대 군사전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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