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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48호

러·일 북방영토 문제의 해결 전망

― 쟁점과 당사국 입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교 수

홍 완 석

최근 러∙일 최고지도자 사이의 잦은 회동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난 1월 22일 연초부터 양국 정상은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작년 2018년에는 아베∙푸틴 단독 회동이 다섯 차례나 있었다. 아베 수상은 2006년 제1차 집권기를 포함해 푸틴 대통령과 무려 25번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양 정상이 배석자 없는 ‘Pull aside’(통역만을 대동한) 방식으로 계속 밀담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후 동결된 러∙일 관계에 극적인 돌파구를 찾고자 했지만 이번 러∙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아베가 공들였던 대(對)러 영토외교가 ‘도로 아미타불’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국제법상 러·일 관계는 현재까지 ‘전쟁의 지속’ 상태다. 1945년 태평양전쟁 종료 이후 교전 당사국인 소련과 일본이 전쟁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결산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화조약 체결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다름 아닌 미해결된 북방 4도(남 쿠릴 4도) 영유권 분쟁이다. 정체상태의 현 러·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타개하는데 있어 ‘영토문제’와 ‘평화조약’은 동전의 앞뒷면을 형성한다. 러·일은 영토문제가 존재하고 그것이 양국 간 중요한 현안이라는 점을 인정해왔다. 평화조약 체결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동의해왔다. 문제는 평화조약 체결에 대한 양국의 접근법이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은 영토문제와 평화조약 체결을 철저히 연계시킨다. 즉, 북방 4도(하보마이∙시코탄∙ 쿠나시르∙에토로후)의 ‘일괄 반환’을 평화조약 체결의 양보할 수 없는 선결조건으로 내세운다. 이를 위한 대러 정책 기조로 북방영토문제 해결 없이는 러시아가 요구하는 평화조약 체결과 경제협력의 확대가 있을 수 없다는 이른바 ‘정경불가분(政經不可分)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 반면, 러시아는 일본의 남 쿠릴 4도 반환 요구를 근거 없는 억지논리라고 주장하고, 영토문제가 양국 간 최우선적 현안으로 간주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먼저 조건 없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후 상호 신뢰와 우호 분위기 속에서 양국의 이익이 존재하는 방향으로 영토 문제의 점진적인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정경분리’(政經分離)의 원칙에 입각한 ‘교류우선론’으로 요약된다.

  물론 러·일이 영토문제에 대해 항상 비타협적 태도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다. 한때 러시아의 교류우선론이 일본의 정경불가분의 원칙과 어우러지면서 영토협상과 경제협력을 동시에 병행하는 이른바 ‘확대균형의 원칙’으로 수렴되곤 했다. 1997년 11월의 ‘하시모토-옐친 플랜’ 과 2000년 9월의 ‘모리-푸틴 프로그램’, 2003년 ‘러·일 행동계획’의 채택은 그러한 ‘정경병진’(政經竝進)의 원칙을 반영한다. 그러나 확대균형론은 사실 동상이몽의 전술적 타협의 산물일 뿐,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한 대안은 아니었다. 러·일 양국 모두 북방 4도를 그 어떤 가치에 우선하는, 지켜야할 핵심 국익으로 간주하고 먼저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한다.

  2000년대 접어들어 영토문제에 경직된 태도를 보인 푸틴과 고이즈미 정권이 등장한 이래   근 10여 년간 영토협상은 장기 교착국면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와 달리 독창적이고 비전통적 접근법에 기초해 영토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본 정계 및 학계 일각에서 대두되었다. 이를테면 ‘3.5도 반환론’, ‘무승부론’, ‘면적 균등분할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해법이 등장한 데에는 그럴만한 상황적 배경이 있다. 한때 전쟁으로까지 치달았던 러·중 영토분쟁이 2004년 10월 외교적 대타협과 창조적 해결 원리를 통해 해소된 것이다. 러·중은 지난 3백 년간 계속된 우수리 강상(江上)의 전바오 섬(珍寶島/다만스키 섬) 영유권 분쟁을 ‘50:50’의 분할 원칙과 ‘공동사용’ 방식으로 정치적 타결을 이끌어냈다. 이 방식은 2010년 4월 러시아와 노르웨이 사이의 바렌츠해 해상 국경 분쟁에도 적용되어 해소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2016년 12월(15-16)일 규슈 나가토(長門)에서 열린 아베·푸틴 정상회담은 러·일 영토협상에서 새로운 전환점에 해당한다. 그동안 양 지도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 ‘상호 수용 가능한 방안’,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발상에 기초한 접근법(new approach)’ 등이 반영된 합의 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토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진전된 영토협상 내용은 이렇다. “(러·일 양국은) ‘특별한 제도’하에 북방 4도에서 ‘공동경제활동’을 추진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협의를 개시한다”는 것이다.

  북방 4도에서 ‘특별한 제도’를 만들어 ‘공동경제활동’을 하자는 제안은 그동안 아베 총리가 제시해 온 ‘새로운 접근법’의 핵심이다. 주권이나 영유권 문제를 일단 보류한 상태에서 러∙일 양국이 경제활동 면에서 사실상 ‘공동통치’하는 특별한 제도의 시행을 통해 영토분쟁을 우회하는 해결방식이다. 아베의 영토전략 핵심은 유연한 4도 반환론이다. 말하자면 어떻게든 북방 4도에 자국의 법률이 영향을 미치도록 해 이들 지역에 자신들의 주권이 있음을 드러내는 선례를 남기려 하고, 이를 토대로 추후에라도 러시아로부터 4개 섬 모두를 되돌려 받겠다는 복안이다. 이러한 전략적 셈법 하에 아베 정부는 자국의 법적 입장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 즉, ‘특별한 제도’를 강조하지만 남 쿠릴 4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은 단호하다. ‘공동 경제활동은 어디까지나 러시아 주권과 법의 적용이 전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가토 정상회담 이후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북방 4도의 귀속 범위와 공동경제구역에서 경제행위 주체들의 제반 활동에 대해 어느 나라 법률을 적용할 것인지 관한 러∙일 양국 정부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월 22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푸틴과 아베의 영토문제 해법이 ‘동상이몽’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한 자리였다. 따라서 앞으로 러∙일 양국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특별한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영토협상의 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북방영토문제 해결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는가?

   과거 수차례의 정권변동을 거치는 과정에서 러∙일 최고지도자들이 ‘새로운 접근법’, ‘새로운 구상’, ‘새로운 사고’ 등의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영토협상의 코페르니쿠스적 타결을 모색해왔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러∙일 간 영토협상 ‘빅 딜’이 어려운 이유는 이 문제의 해결을 촉진하는 기회요인보다는 방해하는 제약요인이 훨씬 더 크고 많기 때문이다. ‘남 쿠릴 4도 양도 절대 불가’ 또는 ‘북방 4도 일괄 반환’을 외치는 러∙일 양국 내부 보수세력들의 격렬한 반발, 러시아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남 쿠릴 4도의 경제적 및 군사전략적 가치, 일본이 러시아의 반대편에 있는 미국과 공고한 동맹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이 영토협상의 낙관적 전망을 어렵게 하는 핵심 제약요인들이다. 영토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명료하고 가시적인 ‘반대급부’ 확보 없이 남 쿠릴 4도를 일본에게 넘겨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전후 맥락에서 북방영토 문제 해결은 일본이 미일 동맹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화를 모색할 때, 또는 중국의 패권주의가 러·일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때 한결 더 용이해 질 것이라고 판단된다. 향후 푸틴의 러시아는 아베 정부의 외교적 ‘구애’를 즐기는 가운데 영토문제를 일본의 경제력 유인과 함께 서구의 단일대오를 흩뜨리고 일본을 순치시키는 ‘지렛대’로 계속 활용할 것이다.

홍완석 교수(evan@hufs.ac.kr)는 한국외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장 및 러시아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학과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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