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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204호

셰일혁명 이후의 세계 ― 2018-2019년의 경험

미국은 2011년부터 본격화한 셰일혁명에 힘입어 2018년에 일일 1099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여 세계 1위 산유국이 되었다. 2019년에는 일일 1504만 배럴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그중 770만 배럴이 수압파쇄 기술로 채굴한 셰일오일이다. 사우디가 일일 1200만 배럴로 2위, 러시아가 1080만 배럴로 3위를 기록했다. 셰일가스의 경우에는 이미 2011년에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생산국이 되었다. 미국은 오일쇼크의 여파로 1975년부터 금지시켰던 원유수출을 2015년 12월에 재개하였으며, 2019년에는 사우디, 러시아, 이라크에 이어 세계 4위의 원유수출을 달성하였다. 수출물량의 26%는 캐나다와 멕시코로 향하고, 우리나라(7%)와 일본(7%)을 비롯해 약 180여 국가들이 수입한다.

미국은 1960년대 복지정책 및 대외원조, 베트남 전비로 인한 과다한 재정지출, 무역적자 누적으로 1971년 달러의 금태환(gold exchange) 포기를 선언하였다. 달러패권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1973년과 1979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미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만들어진 두 가지 장치가 이후 미국의 패권을 복원시켰다. 첫째는 달러로만 원유거래를 할 수 있도록 1975년에 미국과 사우디가 결탁하여 맺은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체제이다.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국가들은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를 벌어들이거나, 자산들을 담보로 달러 대출을 받아야 했다. ‘금태환’ 대신에 ‘원유태환’ 이라는 메커니즘이 달러의 실물가치를 보장하게 되었다. 둘째는 뉴욕상업거래소로 대표되는 원유 선물시장 구축이다. 1983년부터 원유선물거래를 개시함으로써 유가는 OPEC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시장에서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결정되었다. 미국은 선물시장에 흘러 들어가는 달러자금을 조절함으로써 원유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특히, 상품개발과 거래규제를 완화시킨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이 제정된 이후에, 달러공급이 늘어나면 유가가 상승하고 달러공급이 줄어들면 유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미국이 지닌 막강한 군사력은 두 장치의 지속적인 작동을 보장해주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절대왕정 국가들은 미국과 협력 대가로 체제보장을 확약 받았다. 이들은 미국의 외교 및 군사적 지원에 기대여 이슬람 세속주의와 신정주의의 도전을 물리치며 왕정체제를 유지하여 왔다.

셰일혁명이 가시화됨에 따라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관심과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셰일혁명의 영향에 대한 전망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에너지 자립에는 도움이 되나, 세계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둘째, 셰일혁명으로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고 에너지 수출이 증대하여 미국 패권이 공고해진다. 셋째, 미국은 에너지 자급자족을 달성하였으므로 아쉬울 게 없다. 중동 등 해외문제에 개입할 필요가 없으니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으로 전략을 변경할 것이다. 셋째 전망의 극단적 형태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2020년 4월 중순까지 드러난 모습들은 첫째와 둘째 전망의 혼합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와 이후 행보들은 셋째 전망과 일치하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둘째 전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었으며, 현실에서 구현된 결과들은 첫째와 둘째 범주에 걸쳐있다. 유권자들 앞에서 구사하는 정치적 수사(rhetoric)와 커튼 뒤의 냉철한 계산에 근거한 정책선택은 희망과 현실 간의 ‘괴리’를 상징한다. 미국의 셰일혁명이 둘째 또는 셋째 전망과 연결되려면 에너지 자립뿐 아니라 에너지 수출을 통해 기존의 ‘페트로 달러’ 체제를 ‘셰일 달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동 산유국들과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유럽 및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여 점유율을 확대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독일의 ‘노드스트림-2’(Nord Stream 2) 가스관 건설에 반대하며 참여업체들에 제재를 가하고, 나토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였던 배경이다. 나토의 방위비 분담 규모는 미국산 셰일에너지 수입 확대와 교환될 수 있는 카드이다.

셰일혁명에 의한 미국 패권강화의 여정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장애물이 놓여있다. 첫째, 셰일에너지의 낮은 채산성이다. 기술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채굴비용을 낮췄지만, 여전히 중동과 러시아산 에너지에 비해 손익분기점이 높다. 페르미안 분지의 셰일오일은 배럴당 45∼50달러 이상 보장받아야 사업성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중동과 러시아산은 20달러에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유가를 달러와 연동시켜 놓은 ‘페트로 달러’ 체제이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계 1위의 원유 소비국이며, 셰일혁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이어 두 번째 에너지 수입국이다. 원유품종이라는 변수를 제외한다면, 산유국들의 증산으로 유가가 하락할 때 굳이 수입가격보다 비싼 비용을 들여 셰일오일을 채굴할 이유가 없다. 에너지 자립을 목적으로 해외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면 ‘페트로 달러’ 체제가 흔들린다. 국제 원유거래에서 위안화 또는 유로화가 달러의 빈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미국 패권을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할 뿐 아니라 에너지를 수출하여 불가침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시나리오이다. 셋째,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분리된 지리적 여건이다. 미국과 유럽 및 아시아를 연결하는 수중 파이프라인 설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대형유조선(VLCC)과 LNG선박을 이용한 수출은 채산성이 낮은 셰일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을 더욱 떨어트린다. 넷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양적완화의 덫’이다. 미국·유럽연합·일본 등 세계 경제대국들은 자신들이 짊어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 때문에 저금리 기조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 인상 등 양적완화 축소를 언급할 때 마다 자산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미국 경제는 침체신호를 보냈다. 저금리 기조 덕분에 중동 산유국들과 러시아는 에너지산업에 소요되는 이자비용을 절감하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사우디에게 ‘감산 철회’를 요구했고, 파월 연준의장에게는 ‘기준금리 인하’를 줄곧 압박했다. 사우디에게는 국제유가 하락을 주문한 반면, 파월 의장에게는 유가 상승을 초래할 통화정책을 요구한 셈이다. 이 모순된 행보는 실물경제와 셰일산업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미국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과 2019년에 65∼75달러까지 올라갔던 국제유가를 54달러 수준으로 낮추고 기준금리를 내려서 민간소비 진작과 주식시장 활황을 도모했다. 배럴당 54달러 선이라면 셰일업체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2018년에 발생했던 사례처럼, 유가가 특정가격 이상으로 올라가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다. 이는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소비 감소를 유발하여 GDP의 70%를 소비에 의존하는 미국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유가가 특정가격 이하에서 머문다면 낮은 채산성으로 인해 셰일업체들이 도산하고, 이들의 회사채 및 관련 파생상품들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연쇄 부실위험에 빠져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18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산 에너지의 수출확대를 지향하고 있다. 이란과의 핵 합의 파기와 對이란 경제제재는 핵확산 방지라는 명분과 함께 미국의 에너지 수출이라는 변수로 설명할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이 이란산 원유수입을 축소하거나 중단함에 따라 그 빈자리를 ‘공정무역과 공급의 안정성’ 논리로 무장한 미국산 에너지가 잠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미국산 셰일에너지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공급처 다변화와 한미 동맹의 징표, 그리고 대미 무역흑자 축소 차원에서 중동산보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보조금 지원으로 수입물량을 늘려가고 있다. 2019년 12월에 타결된 1단계 미·중 무역합의문에는 미국산 농산물 및 에너지 수입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향후, 미국과 사우디 및 러시아 간 에너지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미국과 달리 이들 국가의 에너지 회사들은 국영기업이다. 사업수익은 국부펀드나 여러 형태로 증식하여 유사시 미국 셰일업체들과 저가경쟁의 치킨게임용 ‘실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지난 3월초부터 러시아가 미국 및 사우디를 대상으로 저가경쟁의 치킨게임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푸틴은 셰일에너지의 과잉생산으로 셰일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시기를 기다렸던 듯하다. 때마침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에너지 수요 감소는 러시아에게 유리한 치킨게임의 기회를 안겨다 주었다.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립 능력을 달성하고 대외 협상력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 문구가 함축했던 수준만큼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중동산 석유가 그러했듯이,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입 구조에서 미국산 셰일에너지가 상당한 비중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셰일에너지의 낮은 채산성 극복과 연방준비은행 통화정책과의 조화, 무역협상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셰일혁명 이후의 세계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셋째 전망이 추론하는 고립주의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박주현 대령(irnavy@hanmail.net)은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미해군 병과교에서 대잠전 과정을 연수했으며, 미국 클래어몬트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원함(PCC-781) 함장 역임후 합참 군사전략과에서 해상전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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