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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322호

만천과해(瞞天過海)의 교훈과 평화의 역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기지윤

자연의 원래 상태는 정글이지 정원은 아니다. 정글은 끊임없이 가꿀 때만이 정원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고 방치할 경우 정글은 그저 약육강식의 원칙이 지배하는 투쟁의 현장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뱀과 독충이 우글거리는 정글보다는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된 단아한 정원을 더 선호하고 있듯이 당연히 파괴적인 전쟁보다는 건설적인 평화를 더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방치된 정원이 곧 정글로 돌아가듯 가꾸지 않는 평화는 곧 전쟁을 초래한다. 그동안 전쟁을 억제하고 예방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으로 전쟁은 멈추곤 했지만 그렇다고 이 기간을 꼭 평화의 기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평화란 전쟁을 예방하고자 국가 간 이익의 조율이나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발생한 부산물이지 치밀한 기획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창조물은 아닐 것이다. 이는 곧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 온 역사 또한 전쟁의 역사이지 평화의 역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평화가 인간의 가장 숭고한 목표임에 틀림없기에 평화를 위해선 오히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역설적 의미이기도 하다. 전쟁과 평화가 역설적 관계라는 것은 이제 상식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 했고, 전쟁 중에도 줄곧 전후 평화만을 목표로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전쟁과 평화가 독립된 별개의 현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일체적 관계임을 함축하고 있다. 이를테면 전쟁과 평화 간의 이 같은 역설적 관계는 평화 시 준비태세의 소홀함은 곧 파멸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엄중한 교훈을 시사해주고 있다. 중국의 36계 중 첫 번째 계략인 만천과해(瞞天過海)에 관한 일화는 전쟁과 평화가 역설적 관계임을 교훈으로 예시해주고 있다.

일본의 한 사무라이가 거실에 출몰하는 아주 빠른 생쥐 한 마리를 잡고자 별의별 고양이를 다 투입시켜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낙심한 가운데 새로운 고양이를 사고자 시장에 갔는데 때마침 수도승 한 분이 침울한 표정의 연유를 물어보기에 그 간의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수도승이 본인이 기거하는 절에서 키우고 있는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겠다고 하면서 그 고양이가 반드시 그 생쥐를 잡을 것이라며 사무라이를 안심시켰다. 사무라이는 그 고양이를 받아 당장 거실에 배치하였다. 그런데 노쇠한 고양이는 너무 늙어 거동조차 힘들어 하면서 내내 잠만 잤다. 사무라이의 수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생쥐가 고양이 앞을 신속하게 지나가기를 반복하다 점점 속도를 줄여 천천히 횡보하다 나중엔 잠자는 고양이 앞에서 춤까지 추며 농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고양이는 계속 잠만 자고 있었다. 급기야 생쥐는 고양이 앞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된다. 그것도 넋을 잃고 잠을 잤다. 그 순간 노쇠한 고양이는 눈을 번쩍 떴다. 단잠에 떨어진 생쥐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 사무라이 집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이 일화는 경계를 늦추는 순간이 적에게 공격의 호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평화로울수록 더 완벽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역설적 교훈을 주고 있다. 전쟁은 준비할 때만이 예방할 수 있다. 평화를 희생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평화를 보존하는 방식이다.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인식상의 오류는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평화를 전쟁의 대안으로 인식, 전쟁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상대에게 공격이나 도발의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 평시 군사, 외교, 기술, 경제 등과 같은 제반 국력의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 대비태세를 굳건히 해나가는 것은 상대에게 섣부른 행동을 자제하라는 경고장을 보내는 것이다.

전략은 능동적일 때(proactive) 승리하고 피동적일 때(reactive) 실패한다. 주도권을 내가 먼저 거머쥘 때 상대는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사후에 대응하는 것 보다 사전에 대응하는 것이 억제나 예방 면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이다. 공격을 당한 후 보복을 하겠다는 위협도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이 보다는 평시 그러한 응징역량을 주기적으로 현시하면서 응징의지를 천명할 때 억제의 신뢰성은 더욱 향상될 것이다.

동맹국인 미국의 전략자산이 부산과 제주, 그리고 대한민국 상공에서 현시되고, 한국전 참전용사를 초청, 보은 행사를 실시하고, 나토를 비롯한 서방의 우방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모두 북한위협에 대해 사전에 대비를 하는 전형적인 능동적 조치(proactive measures)인 것이다. 능동의 원칙은 평화의 보존이 전적인 나의 책임인 만큼 전쟁에 대한 대비도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는 책임원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전략의 참된 방향은 상대가 싫어하는 방향이다. 북한은 현재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이러한 모든 능동적 방식들을 싫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기에 더욱 평안함을 느낄 것이다.

기지윤(k002061@gmail.com/ jy.kih@gmail.com)은 현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천대학교 연구중점교수,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도 태평양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지역안보질서, 소다자안보협력, 한미일 삼각동맹 등이다. 최근 발간된 논문으로는 ““Lessened allied dependence, policy tradeoffs, and undermining autonomy: focusing on the US-ROK and US-Philippines alliances(2023),” “A Study on ‘Intra-alliance bargaining-based’ Approach to the US-Japan Alliance (2022)” 등이 있다.

  • Stefan H. Verstappen, The Thirty-Six Strategies of Ancient China, China Books & Periodicals, Inc., San Francisco,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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