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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20호

우려되는 아·태지역 해양안보 정세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 재

 

정 호 섭

최근 남·북한 및 미·북한 정상회담의 개최 합의 등 한반도에서 시작된 대화 분위기에 묻혀 잠잠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해양안보가 매우 우려스럽고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무섭게 신장하고 있다. 필리핀의 제소로 2016년 7월 UN해양법협약 하에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남중국해 해양 및 도서영유권 주장은 국제법상 근거 없는 것으로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필요 시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며 인공도서 건설 및 군사화 등 해양팽창 기도를 계속하여 이를 빠르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은 앞으로 국제법을 무시하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괜찮겠다고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일방적 행동은 영토·해양영역을 둘러싼 분쟁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지역 해양안보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이다. UN 해양법협약이나 항행의 자유 등 이제까지의 법과 규범에 기반한 해양질서의 기본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국가경제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국가들이 중국의 공세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불공정한 정치·경제적 강압행위에 굴복하여 중국에 편승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필리핀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최근 중국몽(中國夢)을 주도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이 폐지되어 사실상 앞으로 무기한 중국을 통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중국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강력한 통치 하에 국가 총역량을 총동원하여 해군력을 증강하고 해양팽창을 기정사실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이제까지 지역 해양안보를 보장해 왔던 미국은 중국의 공세적•현상타파적인 행동에 대항할 만한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7년 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서’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主敵으로 식별하며 특히 중국의 해양팽창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a free and open Indo- Pacific) 전략을 추진할 것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빠르게 쇠퇴하는 가운데 미국은 ‘자국 우선’(America First) 정책을 추진하고 동맹의 가치를 경시하고 있어 이 전략이 남중국해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시행될 것인지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또한 미해군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양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항행의 자유작전(FONOPs: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이나 초계활동을 지속 실시하고 있지만 이 때문에 중국이 천문학적 규모의 자원을 투자하며 건설하고 있는 남중국해 인공도서 및 군사기지를 원상회복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중국은 이미 이들 분쟁해역 및 도서들에 대한 사실상 통제 수준에 거의 도달했고 마음만 먹으면 남중국해를 지나는 국제 해상교통로를 차단할 수도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외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려 했던 미해군의 355척 함대건설도 예산상의 제약과 미국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 지역의 해양안보 상황 추이를 그리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이제까지 미국이 유지해 오던 군사기술 분야에 대한 우위도 최근 3∼5년 전부터 중국의 빠른 추격으로 점점 상쇄되고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남중국해가 미·중 패권다툼의 무대가 되면서 국제해상교통로 상에 양국 간 우발적 군사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국가들이 미국과 연합하여 중국의 해양공세에 맞설 처지도 아니다. 역내국가간 역사•영토분쟁•종교 및 인종 등의 다양한 문제로 대립이 상존하고 있으며 지역차원에서 해양안보 문제를 다루어 나갈 제도 및 장치도 미약하다. 특히 지역국가들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미·중간의 패권경쟁에 자국이 연루되거나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이 없는 가운데 중국의 무자비한 보복조치에 피해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에 맞설 수 있다고 평가되는 유일한 지역국가인 일본도 중국의 공세적 행동에 대응할 때에는 반드시 미국과 함께, 그것도 미국이 앞장서고 일본은 뒤따른다는 보다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국가들은 미국이 과연 중국의 공세적 행동에 맞설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면서 미국보다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실정이다. 결국 중국의 힘과 영향력의 급부상으로 지금까지 아·태 지역 해양안보를 유지해 왔던 미해군의 해양통제가 도전 받고 법과 규범에 기반한 해양질서의 근간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의 원칙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회자되던 아•태 지역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고개 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관적인 상황의 추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 사실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마땅한 대책을 찾기란 어렵다.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의 해양도발에 대응하는 데에만 집중하여 왔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향후 우리 해양안보 상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위협에 추가하여 중국과 관련된 불안정 요인이 주가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국력이 더욱 신장하고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강압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THAAD 배치 사태에서 우리는 이미 이를 경험했다. 이런 강압행위에 굴복하면 앞으로 중국의 도발은 더욱 자주 일어나고 우리의 국가안보 상 행동의 자유는 더욱 구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우리는 이제까지 지역 해양안보를 보장했던 법과 규범에 기반한 해양질서가 앞으로도 지속되도록 한미동맹 차원에서 협력해 나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한미동맹이 주변국의 해양도발을 억제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이나 ASEAN•호주 등 무역국가로서 해양안보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활동이 지속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해군과 해경은 인도적 지원 및 재난구조(HA/DR) 활동이나 림팩(RimPac) 등 국가 간 신뢰·이해를 증진시키는 다국간 해양안보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역내 해상교통로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해양안보 종심(縱深)을 늘려나가는 길이다.

  추가적으로 한국은 우발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스스로의 해양안보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특히 정부는 해양안보를 위한 장기 전략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즉, 해양안보 측면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 요망상태가 무엇인지, 그것이 실질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인지, 이를 위해서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국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구적인 노력을 한다면 어떤 비용과 위험부담을 감당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정책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핵심적인 해양안보를 위해 한국은 긴 안목을 갖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와 전략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이를 묵묵히 구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제31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정호섭 제독(jhs012@yahoo.co.kr)은 영국 랭커스터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충남대(군사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분야는 아·태지역 해양안보, 미·일 안보관계, 군사전략·정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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