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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25호

한반도 비핵화 담판과 ‘변화의 역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정 삼 만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주변의 국제정세가 마치 롤러코스터의 주행처럼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하루 밤낮을 통해 세상이 세 번이나 바뀔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은 하룻밤이 아니라 TV를 켤 때마다 세상이 바뀌어 있음을 실감할 정도이다. 또한 변화가 너무나 현란하기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싫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변화들이 우리가 그 동안 그토록 원했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에 엄두도 못 냈던 남북 간의 교류협력•평화로운 공존•공동 번영 등을 기대해 봄직하다.

  이러한 긍정적 기대감이 듦에도 불구하고 왜 마음 한 구석엔 처음의 기대만큼 일말의 우려 또한 느껴지는 것일까. 불현듯 1839년 프랑스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장밥티스트 알퐁세 카(Jean-Baptiste Alphonse Karr)가 언급한 “변화가 거듭될수록 본질은 더욱 한결같아진다”(plus ça change, plus c’est la même chose; the more things change, the more they stay the same)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계속되는 변화는 곧 변하지 않는 본질적 존재가 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즉, 표면상의 변화는 곧 내면상 불변적 본질의 존재를 구현하는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비단 안보분야뿐만 아니라 인간사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한 역설적 진리이다. 일명 ‘변화의 역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퐁세 카의 ‘변화의 역설’을 현재 요동치는 한반도 비핵화 정세에 적용해보자. 현란을 넘어 혼란스러울 정도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질서정연한 본질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상식수준이겠지만 한 국가차원에서 영원히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익’(國益)이라는 대의명제이다. 물론 대부분 국익이란 용어를 모호한 개념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한자로 나라 ‘국’(國)자는 ‘사람이 땅위에서 창을 들고 지키는 영역’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국가란 본질적으로 안보집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국익의 근본적인 기준도 안보(安保)라고 할 수 있는 바, 주변정세의 변화가 국가안보에 유리하면 국익에 합치되는 것이고 국가안보에 불리하면 국익에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그 동안 자신의 안보를 위해 핵미사일을 개발해 왔고, 지금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 그렇게 개발한 안보수단을 폐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참으로 기이한 역설이지만 안보란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일관된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한국•중국•일본•러시아 역시 지금쯤 오직 자국의 국익인 안보의 관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복잡한 셈법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북미정상회담 날짜가 확정되었다. 물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미국의 입장과 ‘완전하고 불가역적이고 검증가능한 체제안전보장’(CVIG)이라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 접점을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이나 북한 모두 국익차원의 자국안보가 본질이라면 미국의 CVID와 북한의 CVIG사이 어디서인가 합의점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미북협상에서 접점이 형성되면 금번 한반도 비핵화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도 그 협상이 결렬되는 것보다 일정접점에서 타결되는 것이 최소한 자신들의 안보측면에서 무조건 이익이 될 것이다. 즉, 모두에게 득이 되는 ‘파렛토 옵티멀’(Pareto’s optimal)적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변의 본질이 국가적 수준인 국익이 아니라 개인적 수준인 개인이익에 있다면 현 상황은 더 꼬일 수가 있다. 물론 이론적으론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속에 틈이 하나도 없는 단단한 당구 볼처럼 개인의 이익들이 합하여 곧 전체로서의 하나인 국가의 이익이라고 간주할 수는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실제는 다르다. 분석의 수준을 개인(국가의 지도자)에 국한시켜 볼 때 목하 진행 중인 숱한 변화들의 주체는 결국 개인이며, 개인의 입장에서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본질은 개인적인 야망•탐욕•명예•자긍심 등일 것이다. 국가 간 협상에서 협상의 당사자들이 국익을 가장한 개인의 이익추구에 골몰한다면 접점을 찾아 타결에 이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식의 협상이라면 누군가를 희생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 할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많은 역사적 사례도 있다. 한국인들에게 ‘노벨평화상보다는 평화를 달라’는 문구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삼만 박사(smchung715@kims.or.kr)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한국 국방대학원 군사전략 석사와 미국 미주리 주립대 군사전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군사전략 ∙ 해양전략 ∙ 해양안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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