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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8호

필리핀-중국 남중국해 분쟁의 중재재판 관할권 인정 의미: ‘자유해’ 실현을 위한 전기(轉機)인가?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강사

이 기 범

2015년 10월 29일은 남중국해 관련 분쟁사에서 의미 있는 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UN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하에서 구성된 중재재판소(이하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는 지난 2013년 1월 22일 필리핀의 중국에 대한 서면통고로 시작된 중재재판에 대해 관할권(jurisdiction)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남중국해 분쟁이 본격적으로 국제법의 잣대에 따라 판단되기 위한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본안(merits) 결정 단계에서 이미 제기되어 있는 필리핀의 주장들에 관하여 중요한 법적 판단을 내린다면 이는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 중국을 포함한 남중국해 관련 국가들의 국제법에 기초하지 않은 여러 주장들을 무력화시킬 기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UN해양법협약 제288조 제1항은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를 비롯하여 UN해양법협약이 제공하고 있는 재판소들이 ‘UN해양법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 관한 분쟁에 관하여 결정할 관할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중국해 문제는 주로 남사군도(Spratly Islands) 내의 몇몇 지형들에 대한 영유권 분쟁 또는 소위 ‘구단선’(nine-dash line)을 한계로 한 중국의 역사적인 권리 주장에 대한 베트남∙필리핀 등 다른 남중국해 연안국들의 반발 등의 문제로만 알려져 왔다. 따라서 남중국해 지역에서의 분쟁이 UN해양법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 관한 분쟁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으로 느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재재판을 위해 필리핀이 제기한 여러 가지 주장들 중 “남중국해에서 소위 ‘구단선’에 의하여 둘러싸인 해양영역과 관련하여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주권적 권리, 관할권 및 역사적인 권리는 UN해양법협약에 반하고 법적 효과가 없다”라는 주장은 동일한 분쟁을 영유권 분쟁이 아닌 UN해양법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 관한 분쟁으로 ‘정의’(characterization)함으로써 UN해양법협약이 남중국해 분쟁 해결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13년 1월 22일 필리핀의 중재재판 제기 이후 중국은 관할권 문제에 대한 중재재판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향후 본안 단계에도 중국의 참여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UN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제9조에 의하면 중국의 불출정(non-appearance)은 소송의 진행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의 본질이 영유권 분쟁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2014년 12월 7일 ‘Position Paper’라는 이름으로 공표하였는데, 이 Position Paper가 중재재판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음에도 오히려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는 이를 관할권 문제에 대한 중국의 항변으로 인정하였다. 즉, 중국의 불출정 전략 및 Position Paper 공표가 중국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중재재판에서 제대로 밝히지도 못한 채 사실상 중재재판에 참여한 것과 같은 효과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이는 남중국해 분쟁이 더 이상 국제정치의 문제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결정에서 필리핀의 15개의 주장들 중 ‘Scarborough Shoal’과 같은 지형이 UN해양법협약 제121조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을 가질 수 있는 ‘섬’(island)인지 아니면 12해리를 한계로 하는 영해만 가질 수 있는 ‘암석’(rock)인지 또는 ‘Subi Reef’는 (만조 시 물에 잠기는) 간조노출지(low-tide elevation)인지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판정을 내리겠다는 관할권이 인정되었지만, ‘Mischief Reef’에 중국이 시설물 공사를 하는 것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본안 결정 단계에서 관할권 문제를 함께 검토하기로 하였다. 만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본안 결정 단계에서 Scarborough Shoal이 최대 12해리의 영해만 가질 수 있는 암석이라 판단한다면 영유권 분쟁에 관계없이 Scarborough Shoal 기선으로부터 12해리 밖에서는 어로의 자유 및 군함의 자유통항 등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Subi Reef가 간조노출지로 판단된다면 이 지형은 영해조차 가지기 어려우므로, 예를 들어 미국의 군함이 Subi Reef를 가깝게 지나쳐간다 해도 중국은 국제법적인 주장을 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자신의 관할권이 제한되거나 배제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겠지만 관할권이 확실히 인정된 몇몇 문제들만 보더라도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본안 결정에 따라 남중국해 관련 국가들의 주장들이 국제법에 부합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관할권 인정에 따라 앞으로 이루어질 본안 결정은 각국의 남중국해 관련 주장들을 국제법에 일치시키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2015년 11월 4일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2015년 11월 5일 아셈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대한민국 외교부장관은 모두 “남중국해에서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하였다. 원론적인 언급으로도 들릴 수 있으나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공해’에서 누리는 자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남중국해 내에 공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만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본안 결정이 남중국해 내에서 중국이 영유하고 있는 지형들 중에는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을 가질 수 있는 섬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외교부장관의 이번 발언은 국제법에 매우 합치된 발언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결정 및 향후 있을 본안 결정이 필리핀과 중국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만약 남중국해 내의 지형들 중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을 가질 수 있는 섬이 전혀 없다고 판단된다면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본안 결정은 남중국해 내의 공해 존재 가능성과 더불어 모든 국가들에게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가 이미 17세기 초에 역설하였던 해양법의 이상인 ‘자유해’(Mare Liberum)를 남중국해에서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영유권 분쟁에 가려 경시되었던 자유해 개념은 국제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남중국해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실현될 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기범 박사(syshus@gmail.com)는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영국 에딘버러대학교(The University of Edinburgh) 로스쿨에서 해양경계획정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서 국제법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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