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 Periscope 제199호
코로나 사태와 남중국해 긴장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가 전 세계를 단합시킬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세계를 찢고 분열시키고 있다. 지난 4월 미・아세안 화상 외교장관 회의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이 Covid-19에 쏠린 전 세계적 관심 집중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 지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 이웃을 강요하고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는 행위를 강력히 반대하며 아세안 회원국들에 대해 중국에 대항하도록 촉구하면서 여러 관련국들 역시 중국의 책임을 추궁하기를 바란다”는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중국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이와 같은 중국 때리기에 강력 반발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지정학적 무기나 도구로 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은 2016년 7월 국제중재재판소가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9단선(nine-dash line)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이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 등 남중국해 연안 국가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활보하면서 이들 국가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남중국해를 벗어난 인도네시아의 North Natuna Sea에서 대규모 중국 어선단이 전통적 어장이라고 정당화하면서 불법 어로 활동을 하다 발각되어 인도네시아가 조코위 대통령의 직접 지휘 하에 군사력을 동원, 불법 중국 어선단을 인도네시아 해역 밖으로 축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반면, 미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동남아 국가들을 규합하기 위해 중국의 집요한 남중국해 도발에 대한 이들 국가들의 분노를 활용하려 한다. 금년 6월 들어와서 미 핵추진항공모함 3척이 동시에 필리핀 해와 그 주변 태평양 해역을 순찰하면서 중국에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연안 동남아 국가들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중에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남중국해 수역에 대한 패권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4월 초 중국 해안경비정에 의한 베트남 어선 침몰 사고는 1년도 안되어 중국에 의한 두 번째 베트남 어선 침몰 사고로 미 국무부 대변인이 규탄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국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리핀이 중국 해안 경비정에 의한 베트남 어선 격침 사건 이후 베트남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베트남 어선 침몰 열흘 후 중국은 논란 많은 지질 조사선 Haiyang Dizhi 8호를 작년에 이어 베트남 EEZ에 재배치하였다. 연이어 중국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필리핀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가장 큰 섬인 Thitu 섬 주위에 해상민병대 함정 편대를 주둔시키고 있으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내 Asia Maritime Transparency Initiative에 의하면 하루 평균 18척의 해상민병대 선박이 배치되어 필리핀의 인프라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다. 2월에는 중국 해군함정이 필리핀 군함을 향해 포사통레이다를 겨누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3월에는 필리핀과 베트남이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형물에 중국이 두 개의 새로운 해양 연구기지를 설립, 활동을 개시했다. 4월 중순에는 중국 항공모함그룹이 해상훈련을 실시하였으며 4-5월 기간 중국 해양조사선 Haiyang Dizhi 8호가 말레이시아의 대륙붕 내에서 말레이시아 시추선 West Capella 호의 석유・가스 탐사 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한편, 미국은 항행의 자유작전과 군사훈련 실시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등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4월 16일부터 미 해군과 해병대는 중국의 지질조사선 Haiyang Dizhi 8호가 중국 해양경비대와 해상 민병대 소속 경비정의 호위 하에 활동 중인 남중국해 해역 근처에서 F-35 전투기 훈련을 실시하였으며 그 직후 동일 수역에서 호주 군함 1척이 3척의 미 해군 함정과 합류하여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미 해군은 작년에 남중국해에서 총 7차례 항해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올해 들어와서 5차례 그러한 작전을 시행한 바 있다. 5월 31일자 South China Morning Post 지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남중국해상 방공식별구역(ADIZ) 도입 계획을 세우고 발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남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미국과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2012년부터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 군사 요새화하고 있으며 동시에 해양 경비대와 해상 민병대를 육성하고 이들에게 남중국해 수역의 큰 권역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권을 부여하였다. 인공섬은 사실상 이들 경비대와 민병대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연안국들은 중국의 밀어붙이기를 멈추게 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좌절감을 반영하듯, 중국의 광활한 영유권 주장에 대해 베트남은 상설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소송은 2013년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하여 2016년 승소한 소송과 유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베트남은 또한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또한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다자 무대에서 중국의 도발을 억제하는데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필리핀은 2016년 7월 상설 중재재판소의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필리핀 국익 침해 및 어로 활동 방해가 계속되자, 이 문제를 유엔 총회 의제에 포함시켜 국제 여론전에 호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국제사회의 큰 이해가 걸린 남중국해 행동규칙(CoC) 체결의 마무리 협상은 2018년부터 본격 시작되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에 처해있다. 중국이 요구한 세 가지 조건 ― 즉, ‘CoC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적용 대상 아님’, ‘남중국해에서 역외 국가와 합동 군사훈련은 협정 당사국 모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함’, ‘남중국해에서 역외국가와 자원 개발은 허용되지 않음’ ― 을 아세안이 수용할 수 없어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중국 측 요구 수용은 2016년 7월 상설 중재재판소의 9단선에 대한 판결을 무효화하는 것이며, 미국과 유럽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이는 만큼, 아세안은 서두르지 않고 불리하게 타협함으로써 CoC 협상을 마무리할 의도가 없다고 외교 소식통은 진단하고 있다.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도 양측 간에 팽팽히 맞서는 쟁점이다. 아세안과 중국은 현격한 입장 차이를 줄여야 하는 어려운 협상에 직면해 있으며 아세안으로서는 내부 결속을 강화하면서 연합 전선을 유지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남중국해 문제를 푸는 실타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남중국해는 국제법의 중요 원칙과도 관련되어 있다. 항행의 자유 및 상공 비행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국제법 원칙은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한다. 2016년 7월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 역시 존중되고 이행되어야 한다. 어족 자원과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은 연안국과 중국 간에 어느 정도 주고받기와 중국의 관대함을 결합하여 접점을 찾아볼 만하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인접 소국들로부터 중국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높여 남중국해 분쟁을 관리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21일자 싱가포르의 Straits Times 지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 기사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18세기 초 중국과 조공관계에 있던 베트남이 국경 너머 구리 광산에 접근하기 위해 청나라 땅을 탈취하였는데 청 황제는 이를 엄격히 다스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땅의 일부를 베트남에 할양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청나라 황제들의 외교정책 선례를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와 역사적 선례가 국제적 여론을 형성하여 소통의 공간을 더 넓게 열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 약력
정해문 대표(hmchung77@gmail.com)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외교부 입부 후 주그리스대사, 주태국대사,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2011년 말 퇴임 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강의하였으며 서울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전문가 그룹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국내외 관련자료
- Bhavan Jaipragas. “Coronavirus grabs headlines, but South China Sea will be Asean’s focus.” The SCMP, June 25, 2020.
- James Stavridis.”A Cold War Is Heating Up in the South China Sea.” Blommberg, May 22, 2020.
- Hannah Beech. “U.S. Warships Enter Disputed Waters of South China Sea as Tensions with China Escalate.” Th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 Brad Lendon. “Coronavirus may be giving Beijing an opening in the South China Sea” CNN, April 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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