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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241호

미국-중국 관계에 대한 “지정학의 귀환”과 “지경학” 용어의 의미

박주현 박사

“지정학(Geopolitics)”은 국제관계 연구에서 지리가 국가이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분과이다. 이 용어는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식민지 쟁탈전이 횡행했던 19세기에 민족통합과 팽창정책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출현하였다.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독일 지리학자인 라첼(Friedrich Ratzel)과 그의 제자였던 셀렌(Johan Rudolf Kjellen)이 생활공간(Lebensraum)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독일에서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도구로 악용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는 유라시아 대륙 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대(大)전략 수립에 활용되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미드(Walter Russell Mead)는 2014년 Foreign Affairs지에 기고한 “지정학의 귀환: 수정주의 세력들의 복수(The Return of Geopolitics: the Revenge of the Revisionist Powers)” 글을 통해 냉전종식 이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강대국들 간 권력정치가 득세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국가로 지목하며, 이들의 현상(現狀)변경 정책이 영토 확장, 해상교통로 통제, 세력권 형성 등 지정학 논리가 유행하던 과거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내외 언론과 학계는 미국-중국 간 갈등 상황을 묘사하는 문구로 “지정학의 귀환”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지경학(Geo-economics)” 용어도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원래는 무역과 투자의 관점에서 산업벨트 형성이나 물류입지 분석을 다루는 지리경제학(Geoeconomics)을 의미하였으나, 루마니아 출신의 전략전문가인 루트왁(Edward N. Luttwak)이 1990년 The National Interest지에 기고한 사설 “지정학에서 지경학으로: 분쟁의 논리, 상업의 논법(From Geopolitics to Geo-Economics: Logic of Conflict, Grammar of Commerce)”에서 지정학과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색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루트왁은 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경제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국가 간의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에서 지경학적 경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정치학자인 해리스(Jennifer M. Harris)와 블랙윌(Robert D. Blackwill)은 2016년 발간한 저서 “다른 수단을 사용한 전쟁: 지리경제학과 국가운영기술(War by Other Means: Geoeconomics and Statecraft)”에서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의 사용을 열거하였다. 이들에게 지경학은 무역과 투자정책, 금융통화 정책, 에너지 및 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해외원조 등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경학 용어는 유럽, 아시아, 중동에서 강대국들 간 갈등을 다루는 언론 기사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냉전종식 이후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지정학” 용어가 “지정학의 귀환” 이라는 문구로 회자(膾炙)되고, “지리경제학” 용어가 “지경학” 이라는 색다른 의미로 차용(借用)된 배경에는 2008년 이후 나타난 미국-중국 관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 전략을 채택한 이후부터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두 국가는 갈등 사안들에도 불구하고 “달러 리사이클링(dollar-recycling)”이라 불리는 메커니즘에 의거한 밀월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중국은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역할을 자처하며 전(全)세계로 저렴하게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낮은 물가유지에 기여하였고,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사들였다. 미국은 저렴한 상품수입과 원활한 국채 매도 덕분에 낮은 물가상승률과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종료이후 최장 기간의 “골디락스(Goldilocks)경제”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미 연방준비은행(FRB)이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면서부터 중국은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탈피하는 독자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양적완화 정책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었으며, 세계 각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등 달러표시 자산들의 실질가치를 떨어트렸다. 이는 미국의 금융패권이 유사시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실감하게 해준 사례였다. 중국은 자신이 쌓아올린 국부(國富)가 미국의 통화정책에 의해 훼손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었으며, 수출주도 전략이 지닌 취약점도 보완해야 했다. 향후에도 이런 식의 “일방적인” 통화정책이 재연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연되었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들을 미국 국채로 쌓아두지 않고, 내수시장 개척과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실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서부내륙개발 본격화, 내수 부양, 자원외교 강화, 한·중·일 FTA 협상 등의 소식들이 흘러나왔다. 미국은 중국이 진입하기 어려운 조항들로 가득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며 견제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추진으로 반격하였다. 2011년 10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Foreign Policy에 기고한 “America’s Pacific Century” 제하의 글에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를 천명했고 5개의 외교∙군사∙경제 실천방향을 언급하였다. 동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은 호주의회 연설에서 21세기의 지정학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결정될 것이며, 미국은 반드시 그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의 첫 공식연설 주제는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 이었다. 2013년에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천명하였고, 동년 11월 남중국해에서는 군사기지화를 위한 인공섬 건설이 본격화되었다.

“지정학의 귀환”과 “지경학” 용어는 특정한 상황맥락에서 특정한 정책의 필요와 당위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사(修辭)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파이크만(Nicholas J. Spykman)은 지정학을 “지리적 입지의 관점에서 국가의 정책과 행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그가 제시한 “지리적 입지”는 국가들이 점유하고 있는 지리적 위치 뿐 아니라 영토의 크기와 특성, 인구규모, 천연자원, 생산력, 군사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정의로는 냉전종식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전력하던 시기와 지정학의 논리가 횡행하던 시기를 구별할 수 없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정책도 지리적 입지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미국이 추진했던 나토확대, 코소보 개입, 이라크 전쟁의 이면에 지정학의 논리가 개입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카플란(Robert D. Kaplan)은 지정학을 보다 현실적으로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지정학은 “각 국가가 전략을 세울 때 마주하게 되는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연구이며, 지리가 사람들 사이의 대립에 미치는 영향력” 이다. 이 정의는 지정학이 내포하는 지리결정론의 함정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특정 지리가 지닌 정치·경제·군사적 가치가 오랜 기간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이는 결국 인간의 활동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변수이다.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는 원유에 의해 부여받았기에, 원유의 가치가 감소하면 중동의 가치도 감소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신장위구르 지역에 새로운 정치∙경제∙군사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지정학은 정책수립의 영역에서 사물과 현상의 전체 맥락을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관점일 뿐이다. 그리고 그 관점은 국가들 간 국력의 상대적 변화를 발생시키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갱신된다.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지경학은 결코 새로운 사고(思考)가 아니며, 지정학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16세기의 대항해 시대부터 유행하였던 중상주의(mercantilism) 무역정책들과 트럼프로 인해 부활된 보호무역이 “지경학” 용어로 둔갑되었다. 적대국에 대한 경제제재부터 우방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와 최혜국(MFN)대우까지, 정치적 목적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경제정책은 권력정치의 중요한 요소이다.

결론적으로 “지정학의 귀환”과 “지경학”은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아니며, 사용되는 상황맥락에 의해서 의미가 결정된다. 필자는 이 용어들이 회자(膾炙)되는 이유를 미국-중국 관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점이 변했기 때문으로 평가한다. 지정학의 행보가 사라진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의 귀환”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오바마 2기부터 미국-중국 관계가 “본격적으로” 경쟁관계에 접어들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본격적으로” 접어들었기에 가까운 미래에 끝날 리 만무하다. 지정학의 내부 요소에 해당하는 지경학이 별개의 용어처럼 사용되는 이유는, 30여년간 누적된 상호의존 관계로 인해 중상주의 정책을 시행할 공간이 넓어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 회귀 노력과 더불어 관세부과와 환율조작국 지정, 기술제재 등을 통해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통제하려고 노력하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핵심부품과 소재의 공급사슬(Supply Chain)에서 중국의 몫을 줄이려 한다. 또한, 일대일로 지역에서 중국 위안화가 통용되는 비중에 제동을 걸고, 중국의 국부(國富)에 접근이 용이하도록 금융개방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지경학적 정책은 그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 장기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며 군사력 배치와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박주현 박사(irnavy@hanmail.net)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미해군 병과교에서 대잠전 과정을 연수했으며, 미국 클래어몬트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원함(PCC-781) 함장 역임 후 합참 군사전략과에서 해상전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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