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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263호

투키디데스 함정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세 가지 조건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박주현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학자였던 투키디데스는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 간 발생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기술하면서, 전쟁의 필연적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rise)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fear)”으로 규정하였다.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 저서로 유명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2012년 8월 22일 파이낸셜타임즈지에 기고한 사설(Thucydides’s trap has been sprung in the Pacific)에서 “투키디데스 함정” 용어를 사용하였다. 앨리슨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프로젝트(Thucydides’s Trap Project)”로 명명된 연구를 통해 15세기 이후 신흥세력이 지배 세력에 도전했던 사례들이 16개이며, 12개 사례가 전쟁으로 연결되었다고 주장했다. 앨리슨이 밝혀낸 전쟁의 원인은 2,500여 년 전 투키디데스가 결론지었던 바와 동일하다. 기존 지배 세력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신흥세력의 자신감과 자부심에 찬 행동들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미국-중국 간 보복관세를 주고받던 2018년에 파이낸셜타임즈지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올해의 용어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부상하는 신흥세력과 기존 지배세력 간 갈등과 전쟁을 다룬 연구는 전혀 새롭지 않다. 이 현상에 관한 연구들은 오래전에 하나의 학파를 형성할 정도로 방대하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오르간스키(A.F.K. Organski)는 1958년에 발간한 저서(World Politics)에서 강대국 간 세력 전이(power transition)와 전쟁 발생 간의 인과관계에 관한 가설을 제시하였으며, 쿠글러(Jacek Kugler)와 함께 수행한 실증연구를 통해 경험이론으로 정립시켰다. 그들이 1980년에 발간한 “War Ledger”는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 프로젝트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후 렘키(Douglas Lemke)를 비롯한 다수 학자들이 세력 전이 관점으로 다층적 위계질서, 중소(中小)국가 간 전쟁, 동맹 전이, 군비경쟁, 핵 억제 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외에도 길핀(Robert Gilpin)이 제시한 패권전쟁 이론(Hegemonic War Theory), 모델스키(George Modelski)의 장주기 이론(The Long Cycle Theory)도 부상하는 신흥세력과 기존 지배 세력 간의 전쟁 현상을 다루고 있다. 미국-중국 관계는 정계와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던 주제이며,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전이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 2012년부터 “투키디데스 함정” 용어가 자주 회자(膾炙) 되기 시작한 이유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기존 이론들이 예측했던 바가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2012년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30여년 간 지속되어 오던 미국-중국 간 밀월관계가 막을 내리고 경쟁의 정책들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으로부터의 탈출은 패권국과 도전국 간 긴장과 갈등이 전쟁을 촉발하지 않고 관리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진다. 첫째는 20세기 후반 미국-구소련의 경우처럼, 미국의 우위가 유지되고 중국이 추격(overtaking)에 실패하는 모습이다. 둘째는 20세기 중엽의 영국-미국 사례처럼 후발주자에게 평화적으로 패권이 이양되는 모습이다. 미래에 미국-중국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세력전이 이론으로부터 투키디데스 함정의 탈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을 도출할 수는 있다. 첫째는 각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국력 요소들의 생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이다. 둘째는 달러 기축통화 중심의 국제금융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이다. 셋째는 무력 충돌 시 비례성과 적시성에 근거하여 맞대응(tit-for-tat)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의 구비이다.

첫째 조건은 세력전이 이론의 핵심 명제에 기반한다. 오르간스키에 의하면 세력전이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산업화 시대 이전에는 생산수단과 형태가 동등했으므로, 신뢰성 있는 동맹 형성이 국력 증진의 보편적 수단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국력 증진은 사회제도, 정치 및 경제체제, 생산수단, 교육 수준, 기술 수준, 엘리트의 능력 등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 간 서로 다른 국력 성장률은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국력 요소들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정치·경제적 역량의 결과이다. 앨리슨이 설파한 “나라 안의 도전들에 더 집중 하라”는 정책 조언은 세력전이 이론의 주장과 궤(軌)를 같이한다. 즉, 국가의 성공과 실패는 외부 탓이 아니라 내부 탓이다. 미국은 국력의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 내 국력 성장 요소들의 개발에 집중하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 지난해 11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1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법안,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1조 7천5백억 달러 규모의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이 좋은 사례들이다. 

둘째 조건인 달러 기축통화 중심의 국제금융 체제 유지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하여 정치·군사적 갈등의 증폭을 막아준다. 현 국제금융 체제는 실물이 아닌 신용에 기반하여 달러의 무한 발권력이 인정되는 체제이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체제이다. 달러는 미국의 영향력이 투사되는 막강한 무기이면서도, 국가 간 자유무역과 투자의 거래비용을 낮추어서 세계 경제의 성장을 촉진해온 매개체이다. 현재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넘보는 수준은 매우 요원한 상태이다. 위안화가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세계의 시장이 되어서 상품과 서비스를 수입해 주는 역할을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짓이므로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다. 현재 위안화가 국제결제에서 사용되는 비중은 2% 남짓한 수준이다. 중국은 내수시장 개발과 산업구조 조정에 의한 지속적인 성장 유지, 일대일로 사업추진, 경기 둔화 및 부실 발생 대응, 자체 금융경쟁력 제고, 점진적인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금융개방을 통한 해외자금 유입이 필요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18년 4월 보아오(Boao) 포럼에서 금융개방을 천명하였으며, 미국은 2020년 미·중 무역협정 1단계 합의에 금융개방을 포함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자본이 중국의 자본시장에 접근할수록 미국-중국 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은 감소하리라 예상한다. 두 국가 간 충돌 사안들이 절대 양보 불가의 핵심 이익이 아니라면 협상의 폭은 넓어진다.

셋째 조건인 비례성과 적시성을 보장하는 군사적 능력은 국가 간 상호작용의 관계에서 합리적인 맞대응(tit-for-tat)으로 무력 충돌의 확산을 방지하고 관리하는 장치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행동에 비례한 행동으로 적시에 맞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을 평시에 준비하여야 하고, 주기적인 훈련과 반복된 메시지를 통해 사용 조건과 의지를 천명하여야 한다. 미국이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에서 탈퇴하고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해제한 것도 맞대응(tit-for-tat) 능력 구비의 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자행하는 회색지대 도발과 홍콩 보안법 제정에 대응하여 미국이 대만과의 관계 수준을 순차적으로 증진하는 행보도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위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는 사태는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미국이 절대적인 우위를 지닌 기축통화 지위와 중국이 상대적인 우위를 지닌 제조업 능력은 각기 정치적 영향력으로 치환되는 강력한 무기들이다. 군사력과 더불어 이 두 가지 무기를 모두 가져야 진정한 패권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국력 증진의 정책들 – 인프라 개선, 제조업 부활, 글로벌 공급망 재구성, 기술동맹 구축 등이 성과를 거둔다면 미국-구소련의 사례처럼 패권전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한 정책이 실패하여 미국의 GDP 수치가 중국에 추월당하는 경우일지라도, 미국이 통제하는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 체제가 유지된다면 오랫동안 중국의 경제활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낮은 수준의 무력 분쟁에서부터 전면전쟁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상황에서 비례성과 적시성으로 맞대응(tit-for-tat)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이 국력 증진과 국제금융 체제 유지를 뒷받침하여야 한다. 이는 경쟁의 과정에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아전인수식 오판을 방지하고, 모험적 행동을 제어하며, 우발 또는 의도적 무력 충돌을 특정한 수준에서 봉합시킬 수 있는 장치이다.

세 가지 조건을 지향하는 정책은 우리의 국가전략과 군사력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의 국력 증진 정책과 중국의 금융개방은 대한민국의 국부(國富)를 증대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맞대응(tit-for-tat) 능력에 대한 수요는 주한미군의 위상과 한미 동맹의 역할 변화를 초래한다. 극초음속 무기가 보여주듯이 무기체계 발달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변화시킨다. 지구 반대편에서 짧은 시간 내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가능케 하는 기술은 “역외균형”이나 “미국 없는 세계” 주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증대한다는 말은 미국에 대한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증대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국방백서에 기술된 “북한의 직접적 위협과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이라는 문구는 위협의 우선순위를 단정 짓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그 타당성에 대해 숙고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

박주현 박사(irnavy@hanmail.net)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미 해군 병과교에서 대잠전 과정을 연수했으며,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원함(PCC-781) 함장 역임 후 합참 군사전략과에서 해상전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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