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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51호

남중국해에서의 ‘힘’(might)과 ‘정의’(right)

― 남중국해 판정에 대한 외국학자 시각

영국 King’s College
명예교수

Geoffrey Till

지난 7월 12일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필리핀이 중국에 대해 제소한 남중국해 영유권사안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간의 분쟁에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가나·프랑스·폴란드·네덜란드 및 독일국적의 중재재판소 재판관들이 내린 최종판결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은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판결결과에 대해 원칙적으로 항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판결은 만장일치로 단호하게 내려졌다. 재판관들은 필리핀이 제기한 15개 항목의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주요 판결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남중국해에서 타국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의 중국의 영유권 및 독점적인 자원개발에 대한 권리주장은 기각되었다. 둘째, 남중국해에 있는 난사군도(Spratly Islands)는 간조노출지(low-tide elevation) 로서 섬으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영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준으로 사용될 수 없으며 중국이 설정한 ‘9 단선’ 및 영유권 주장은 어떠한 법적근거도 없음을 명확히 했다. 셋째, 중국은 필리핀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자원개발 활동을 하는 것을 불법적이고도 위협적인 방식으로 방해함으로써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해 왔음을 지적했다. 넷째, 중국은 최근의 인공섬 건설과 중국 어선의 불법어로활등을 통해 해양환경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속적으로 위반해오고 있음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인공섬 건설계획은 남중국해에서의 분쟁의 가능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중재재판소가 판결을 내리는데 제약이 있었던 몇몇 사안중의 하나는 ‘세컨드 토마스 사주’(Second Thomas Shoal) 에서의 중국 활동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필리핀은 중국이 세컨드 토마스 사주에서 해양환경을 보존해야 하는 협약을 위반했음을 중재재판소에 제소했으나, 중재재판소는 이 사안을 군사적인 문제로 간주하여 중재재판소의 재판관할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중재재판소는 자국의 군사기지 건설과는 관계가 없음을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인공섬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을 직설적인 어조로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재재판소의 판결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중국은 거듭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해 이해관계가 걸린 주변국들과의 추가적인 양자 혹은 다자 회의를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에 선출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는 다르게 중국에 대해 다소 온건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에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한 필리핀의 앞으로의 대응을 흥미롭게 지켜 볼 만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중재재판소가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이상 필리핀은 자국의 국익에 반하는 정책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중재재판소에 참관인들을 파견하였으며, 특히 베트남은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문제의 중재재판소 소를 지지해 왔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남중국해 사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나, 양국가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중국의 출현이 점차적으로 빈번해 짐에 따라 경각심을 높여가고 있다. 만약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중국이 지속적으로 출현한다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취함과 동시에 미국의 편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설 것으로 예상된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한 중재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중국이 예상했던 수준과 규모를 뛰어넘는 중국의 완벽한 패배를 의미한다. 판결 이후 중국은 판결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였으며, 이러한 불만은 판결 직후 방송을 통해 해상에서의 무력시위로 가시화 되었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이러한 도발적 행동은 중국 스스로 강조해온 ‘평화적 굴기’(peaceful rise)와 ‘비 패권적 행동’(non-hegemonic behavior)의 수사적 담화와 배치되는 것으로 국제사회는 이러한 중국의 행태를 매우 회의적인 시각으로 평가할 것이다. 중국의 과도한 군사적 대응은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이는 중국 스스로 ‘힘이 곧 정의’(might makes right)라는 인식을 고수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재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남중국해에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가간의 구조적 역학관계에 미치는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남중국해 사안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과 태도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최근 수년간 미 해군은 간헐적으로 남중국해에서의 ‘항행 자유훈련’(freedom of navigation exercise)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소형 군함과 해안경비함정 보다는 대형 군함을 배치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암묵적으로 피력해 왔다. 미국은 올여름 ’존 스테니스 항모전단’과 ‘로널드 레이건 항모전단’을 남중국해에 동시에 배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은 앞으로 남중국해에서의 더욱 큰 긴장조성을 전망케 한다. 만약 중재재판소의 판결이 미국과 중국 간의 분쟁 가능성을 고조시키는 상황으로 전개된다면 이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분쟁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두 나라는 현재의 일련의 소란과 논쟁이 어느 정도 잠잠해 지면 더 이상의 긴장고조가 없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 해군은 최근 중국해군과의 근접 대치상황 발생 시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중국해군의 신중한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양국 해군간의 빈번한 상호대치 상황 하에서 무력충돌을 통한 긴장조성을 최소화기 위해 중국이 체득한 학습효과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일단 남중국해에서 현재의 긴장상황이 가라 앉으면 우리 모두는 중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때로는 약소국과의 마찰과 대립이 있다 하더라도 자국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한 발짝 물러서 양보할 수 있는 성숙된 강대국으로서의 역량을 키워가기를 희망해 본다. 또한, 이러한 극적 상황이 벌어지는 무대에 있어서 미국과 아세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들은 신중하고도 분별력 있는 대응으로 중국의 성숙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영국 King’s College 명예교수로서 Corbett 해양정책연구센터 의장이자 싱가포르 Rajaratnam 국제관계 대학원(RSIS) 초빙학자인 G. Till 교수가 한국인 독자를 위해 기고한 것이며 영어원문은 하단의 참고자료를 클릭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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